메종 드 히미코 La Maison De Himiko

영화의,

by 강물처럼

대학 교양영어 시간에 교수님이 그랬다.

한국 사람들은 큰 거 좋아한다고.

연립주택은 맨션 Mansion, 차 이름도 그랜저 Grandeur라면서 왜 캐슬 castle이라고는 안 부르는지 모르겠다고.

그러고 10년쯤 지나고 나니까 정말 캐슬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불어는 전혀 모르지만 대충 메종이란 말, 맨션을 만들어 낸 말 아닐까?

영어는 여기저기에서 가져다 만든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언어니까.

메종 드 히미코,

영화를 보기 전에 줄거리를 읽어볼까 하다가 그만뒀다.

문자가 식상해져서 영상으로 잠시 쉬어볼까 하는데 굳이 펼쳐 읽는다 해도 머릿속에 들어올 리가 없다.

더군다나 2006년에 나왔는데 볼 거면 보고 말 거면 말아야지, 무슨 예비동작이 따로 필요하단 말인가.

히미코는 여자다.

세상이 재미있는 것이 내가 어렸을 때 사람은 여자와 남자 두 종류였었다.

나중에 밝히겠지만 순진한 미스테이크가 바로 저거다.

내가 어렸을 때!

게이라든지 레즈비언, 우리가 변태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과연 요즘에 새로 등장한 21세기 신인류이겠는가.

영화 이야기를 써야 하는데 사회학의 한 지류를 거슬러 타고 오르려 한다.

영화는 그걸 다룬다.

다루기 고역스런 환자와 환부를 다룬다.

솜씨는 좋지 못하다.

메스를 대고 수술하려고도 하지 않고 죽어가는 사람은 죽게 내버려 둔다.

슬픈 사람?

거기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슬프다.

아버지(히미코)는 말기암에 가족을 버린 게이로 살았으며 딸은 그런 아버지를 원망하며 사느라 빚을 갚는 일에도 열심이다.

저주하는 아버지 때문에 진 빚은 오히려 영광스러운 상처일 뿐이다.

사람들은 빚에 쪼들려 딸(사오리)이 젊은 오빠(하루히코)의 제안에 응했다고 보는데 난 아니다.

딸은 억척스럽지만 따뜻한 인간이다.

잊어버리기 전에 적어두겠는데 세상은 여자와 남자가 아니라 따뜻한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작가의 무덤에서 보았던 에피타프가 서늘하게 떠오르는 얼굴을 하고 있는 사유리였다.

그녀의 자유로운 비상을 끄트머리에서 잡고 놓지 않는 것이 아빠다.

아빠가 게이.

엄청난 사건이다.

게이여서 한 번도 자기를 펼치지 못하고 덮혀진 채로 살아가는 페이지들은 서럽다.

그러나 아빠가 게이라는 열어 볼 수 없는 페이지는 불 속에나 던져져야 그나마 펼쳐지는 거 아니겠는가

다행히 히미코는 중심을 잡고 잘 사는?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다.

그도 따뜻하다.

다만 게이라는 사실이 혼란스럽다.

그는 말한다.

딸과 아내를 두고 게이로 삶을 살았던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후회할 수도 없는 일을 우리는 태연하게 늘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 번도 '소수자'가 되어 본 적 없는가?

그렇다고 하면 너는 무심하거나 대범하거나 바보다.

우리는 모두 외눈박이에 외팔이에 외다리, 조울증에 과대망상에 피해망상 종합병원이다.

외노자이며 양심적 병역기피자이고 갑질을 일삼다가 갑질도 당하는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가고 있는.

숨어서나 겨우 자기와 대면하는 우리가 게이나 레즈비언들에게 감히 돌을 던지고 있다.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게 인간이야.'

범죄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대사 중에 하나다.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우리가 어느 쪽에도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그들을 기꺼이 차별하는 거다.

다음 아니면 그다음 늦어도 그 그다음에는 우리 차례도 돌아올 것이니까 잊지나 말자.

메종은 라틴어 manere에서 뿌리를 찾는다. '머물다'라는 뜻이라는 것을 알고 역시 스토리와 제목이 어울린다 싶다.

함께 머무는 방법을 깨닫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대는 어떤 레시피로 그 식탁을 채울 것인가.

메종 드 히미코는 아픔을 이쁘게 치료해 보고 싶어 하는 간호사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영화다.

환자를 위할 줄 아는 간호사는 환자가 알아본다.

환자들은 그런 간호사에게 자기 구석구석을 다 보여주고 말해주고 또 죽음도 맡긴다.

우리는 누구에게 그런 간호 한 번 받아본 적 있는가.

우리는 누구에게 그런 간호 한 번 해준 적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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