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한 말씀만
그의 아내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습니다.
훌쩍 키가 커버린 중학생 아들이 옆에 서서 표정이 복잡한 엄마를 지킵니다.
"저녁을 얼마나 먹던가요?"
혹시라도 들릴까 봐 몇 걸음 더 복도로 걸어 나와서 일러줬습니다.
"콩나물 김칫국이 좋았던지 밥을 좀 덜어달라고 그러시던데요."
"얼마나?"
식구는 그런 것인가 봅니다.
혹시라도 좀 먹었을까 걱정하면서 자기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이 미안한 사람들.
"죽은 먹던가요?"
슬픔인지 두려움인지 정확한 지점을 잡아내지 못하겠습니다. 그의 아내는 여태 살아본 적 없는 세월을 홀로 마주하고 있습니다. 층층이 쌓였던 걱정이 화석이 된 것처럼 얼굴에 표정이 없습니다.
"토하더라도 먹어야 하는데."
그는 아무것도 먹고 싶은 생각이 없다며 아내를 돌려보내고 TV에 나오는 갖가지 요리들을 지켜봅니다.
허물어지고 있는 그의 몸을 주물렀습니다.
그의 엉성해진 어깻죽지에 내 손이 묻힙니다.
시원하다며 좋아합니다.
"부서질 거처럼 많이 야위셨어요."
"2월은 그래도 어떻게 났네요."
내가 하는 말은 냉정하고 그의 말은 엉성했다.
3월이 보름이나 지난 금요일 밤입니다.
그가 많이 말랐습니다.
우리가 봤던 죽음은 모두 그렇게 물기를 잃어갔습니다.
몸이 먼저 알고 차분히 입을 닫습니다.
음식이 끊어지고 다음에는 물을 끊습니다.
그러면서 깨어 있는 것과 꿈을 꾸고 있는 시간이 섞이는 낮과 밤이 찾아옵니다.
생각도 감정도 색깔을 잃고 흑백으로 된 채널 하나만 유지되는 날들이 이어집니다.
내가 나를 감당하지 못할 것 같다는 신호를 마음이 수신합니다.
내 마음이 나를 놓치는 순간을 목격하지 못하고 그대로 날이 밝습니다.
그런 날이 많아지고 빨라지면서 가족들은 망연자실합니다.
말을 잃은 환자의 베드에 적요 寂寥가 기어올라 그 뿌리가 뻗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회한은 본능처럼 떠올라서 눈물이 속절없이 흐릅니다.
그렇게 흐르는 눈물은 아무것도 적시지 못하고 쓰라리기만 합니다.
참을 수 없을 만큼 갈증이 나는 날이 있을 테고 그때에는 괴로워하며 붙잡습니다.
사람들은 흔들어 깨워 마실 것을 찾습니다.
시선이 한 곳에 고정되지 못하고 허공에 징검다리를 만들어 거기를 딛고 건너기 시작하는 해질 무렵에는 슬픔에도 피로가 덮쳐옵니다.
환자는 손을 저어 무엇인가를 찾습니다.
그것은 물일 수도 있고 소원일 수도 있으며 기도나 유언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간간이 웃는 모습을 보이지만 예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는 쓸쓸한 그림자를 들춰보며 보기 좋았던 옛날 얼굴을 자꾸 찾아낼 것입니다.
홀쭉해진 모습이 낯설지 않다 싶을 때가 되면,
그런 마음이 또 미안해서 입을 꼭 다물고 얼굴도 몸도 닦아냅니다.
곁을 지키는 사람의 한숨이 깊어지고 무표정한 근심으로 휴대폰을 들여다보기도 할 것입니다.
그 사이 몸이 괴로워하기 시작하면서 진통제의 강도는 세어지고 그럴수록 잠에 빠져드는 날이 많아집니다.
그러다가 마약이 몸에 들어가고,
다음은 정해진 대로 흘러갑니다.
구름처럼 흘렀으면 좋겠다고 빌지도 모릅니다.
작은 진동에도 몸서리를 치다가 잠드는 환자를 지키며 밤을 보내야 합니다.
함께 봐왔던 것들을 나만 알고 그가 모를 리 없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다스릴 방법이 없습니다.
기침은 잦고 숨이 가빠지는데도 마음은 먼 미래에 있고 꽃밭에 있습니다.
차라리 놔두고 보는 편이 낫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이렇게 헐렁해진 뼈마디를 만지면서 내가 먼저 깨닫습니다.
기도는 단 한 마디뿐입니다.
무엇을 바라지도 희망하지도 않습니다.
떠나간 이들도 그랬었고 그를 위해서도 그리고 나를 위한 기도는 모두 같은 말입니다.
다만 기억해 주기를.
저 깊은 데에서 올라오는 숨 하나가 대신하는 말.
'하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