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생로병사 6
― 공범
조 용 숙
한밤중에 아들 내외 자는
방문 앞 서성이다
화장실 가는 아들 바짓가랑이 붙잡고
저기 혼자 사남유? 그럼 저랑 같이 살아유?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자라
어느새 육순 바라보는 아들은
여보 어디 갔다 이제 왔남유
묻는 치매 걸린 어미 말에
지아비 먼저 보낸 젊은 아낙의
긴긴 독수공방을 상상하다가
늦어서 미안햐
무심하게 한마디 툭 던져놓고는
어미 방 화목보일러에 애매한 장작만
미어터지게 밀어 넣는다
갑자기 오늘이 화요일인지 수요일인지, 어제 일을 떠올려보는데도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요즘 결코 즐겁지만은 않은 경험을 합니다.
한 번도 그래 본 적이 없다고는 말 못 하겠지만 가능한 내 입에서 나오는 일이 없도록 스스로 당부하는 말들이 몇 있습니다.
´짜증 난다. ´
´나이 들어서´
우선 떠오르는 것이 이 두 마디입니다.
짜증 난다고 하면 정말 짜증스러울 것 같아서 그 말이 쓰고 싶지 않습니다.
아니, 짜증스럽다거나 짜증 내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은 것이 본심일 것입니다.
그래서 짜증 내는 사람이 있으면 자리를 피합니다.
달래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짜증을 달래는 사람을 보면 저는 거룩하거나 숭고하다고 느낍니다.
제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저절로 생겨나는 감정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나이 들었다. ´는 개념도 받아들이기 싫은 것이 분명합니다.
몸이 나이 들었는데 그래서 시력도 나빠지고 흰 머리카락도 늘어나고 눈 밑이 장마 지난 축대처럼 불안해졌는데 말입니다.
책꽂이에 책들을 보면서 도무지 기억이 가물거립니다.
그런데도 저는 ´나이 들어서´라는 말을 고백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고백하지 않는 사실들은 늘 짐으로 짊어져야 하는 부담이 있습니다.
나에게서 떨어뜨려 놓지 못하는 또 하나의 불안이지요.
버릇을 잘못 들이는 자식 같은 그것을 내내 어쩌지 못하고 짊어지겠지요.
나이 들어서 치매로 고생하는 어머니를 아들은 짜증 낼 것도 없어합니다.
슬프거나 좌절이 되거나 원망스럽고 안타깝지 않았을 리 없는 동작들을 아들은 선보입니다.
미어터지게 장작을 밀어 넣는 그의 손으로 그의 인생이 흐릅니다.
어머니가 헛소리를 해도 그래서 많이 불쌍하기는 해도 그것이 다 뜨개질이 되어 두 사람의 옷이 되는 풍경입니다.
1965년에 쓴 김수영 시인의 산문집을 엊그제부터 꺼내 읽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꼭 해보고 싶은 것은 풍경 좋은 곳에 작은 도서관입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날이 오면 놀러들 오시기를 미리 초대합니다.
거기 이렇게 쓰여있는 것을, 정말이지 색이 다 바랜 책에 색연필로 줄을 그었습니다.
´풍경을 보는 것도 좋지만 풍경을 사는 것은 더 좋다. ´ p. 48
풍경에 산다는 표현 근사하지 않으십니까.
살면 풍경이 되어야 하는 것인데 사는 일이 도무지 그럴 기미를 보이지 않는 요즘의 풍경입니다.
치매 앓는 어머니와 사는 아들은 풍경을 사는 듯이 보입니다.
´미어터지게´ 불을 넣는 그 아들은 슬프면서도 따뜻한 풍경 속의 인물 같아서 언제든 찾아가 아는 체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내가 아는 노래, 시인과 촌장의 '풍경'이 어디선가 흘러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