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모르는 나무 /황성희

시의,

by 강물처럼

나무를 모르는 나무 / 황성희


바람이 몹시 분다

이름도 모르는 벌판에서

나무가 뭔지도 모르면서

나무로 살았다


저 멀리 벌판 끝으로

눈물이 가득 들어찬 눈동자들이

눈물의 의미도 모르면서

반짝반짝 글썽인다


여기는 어디일까


나무는 생각하는 법도 모르면서

제목도 모르는 책 앞에서 턱을 괸다


위층 어딘가에서

웅얼웅얼 아기를 달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곧 익숙해질 거야

살아서 잠드는 일에 대해

살아서 깨어나는 일에 대해

이름도 모르는 벌판의 낯선 태양과

살아서 마주치는 일에 대해


바람이 몹시 분다

바람이 뭔지도 모르면서

두려움 없이 바람 소리를 듣는다

나무가 뭔지도 모르면서

나무로 살아온 것처럼


눈동자들은 벌판의 끝으로 굴러가 있고

눈물의 의미도 모르면서 자꾸만

반짝반짝 글썽인다



모감주나무를 오래 쳐다봤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꽈리, 그 이쁜 것은 언제나 속이 궁금하다.

붉고 모양 나고 자그맣고 노을처럼 허물어질 것 같은 색은 사람을 궁지로 몰아넣는다. 그가 열매가 되면 나도 열매가 되어 버리는밖에, 나를 갖고 노느라 능청스럽게 흔들리던 종소리 종소리.

생각이 여물려고 할 때, 빛이 어둠에 익숙해지려고 하는 그때에 나는,

안으로 뛰어들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가는 한 마리다.

바래서 헤벌어진 모감주 열매 속을 올려다본다.

이렇게 마주쳐서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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