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40-1

사이좋은 달, 11월

by 강물처럼

2022,1107, 월요일



나 혼자서 세는 숫자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아내도 모르고 아무도 모릅니다.

어제였던가, 어제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아버지 생각이 날 만큼 한가롭지는 않았으니까요. 그러면 전주에 다녀온 그제쯤이었을 겁니다. 아마 그랬을 가능성이 큽니다. 전주 교구청 건물에서 한옥 마을이 내다보였고 한옥 마을을 볼 때마다 늘 내 시선이 머무는 곳이 있으니까요. 노랗게 물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시작하는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여전히 좋아하는 중년이 되었습니다. 가을을 담뿍 안은 교구청 나무들을 하나씩 지나서 역시 길을 찾았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가면 전동 성당이 보이고 성심학교가 보이고 거기에서 11시 방향으로 한 뼘 정도 내려오면 교육대학교가 있고... 내 유년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서학동 성당이 다른 건물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거기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빠도 마음은 어렸겠구나. ´




내 나이는 이제 쉰둘, 아버지는 쉰넷에 돌아가셨습니다. 다른 때와 다르게 오십, 그랬을 때 생생하게 나를 감싸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오십이 되고 알았을까. 알았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당신이 곧 세상을 떠날 것을 조금이라도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어쩌면 5년짜리 1825일의 일기를 거꾸로 쓰는 것도 내가 아팠기 때문이 아니라, 오십이 되었으니까,였던 것이었나 싶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나를 깨우쳐 주시고 계십니다. 아버지라는 이름은 하늘에 계시든 어디에 계시든 그게 좋으신가 봅니다.


아버지 나이에 가까이 다가가는 마음이 꽤나 복잡합니다. 미안한 것도 같고 여전히 무엇인가 잘못하는 것 같아서 무겁기도 하고 또 얼마쯤은 나도, 아버지도 이해가 될 것 같아서 막걸리라도 한 상 차려 놓고 올해 단풍은 곱습니다, 그럴까 하다가 역시나 아버지는 어색해서 물에 비친 그림자를 후정거리듯 고개를 흔들어 나를 깨웁니다.




그때 어머니는 마흔아홉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모습으로 기억되고 어떤 사람은 직책이나 신분으로, 어떤 사람은 장면으로 기억된다면 어머니를 기억하게 하는 것은 ´말´입니다. 차를 타고 강진에서 임실로 넘어가는 길에서 생각나는 말, 효자동에서 금산사 가는 고개에서 떠오르는 말, 예수병원에서 익산으로 돌아오면서 롯데 백화점 앞을 지날 때 했던 말, 그 말들이 나에게는 어머니가 됩니다. 한때의 큰 폭풍이 다 지나가고 어머니도 한층 머리에 단풍이 들던 시절이었나 봅니다. 그 말씀이 남았습니다.




´아들 친구들이 무서운 거야. ´




아들도 아니고 아들 친구들 눈이 무서웠다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의 삶을 한 문장으로 읊으셨습니다. 치명자산에 기도하러 가실 때에도 사람들의 눈을 의식했고 큰 식당에 하루씩 날품 하러 가서도 무엇인가를 잃지 않으려고 하셨을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사람을 사람으로 지키는 계명 같은 것은 무엇입니까. 아버지는 어머니의 계명이 되셨습니다. 그때는 전혀 몰랐습니다. 나 사는 것도 벅찼습니다. 머리가 좋지 않은 수험생들은 눈에 띕니다. 머리가 좋은 학생들이 돋보이는 것처럼 그들도 유난히 눈에 잘 보입니다. 내가 늘 가슴 먹먹해하는 곳은 머리가 좋지 않은 사람이 빽빽이 누벼 쓴 노트 앞입니다. 다 쓰고 빈 볼펜이 한 통 가득 차 있는 동그란 깡통 앞입니다. 저는 5,255번째 글을 쓰고 있습니다. 재능이 없어서 삶이 밝지 않아서 좋다는 생각을 이제는 합니다. 그래서 여기까지도 왔습니다. 그게 아니었으면 나는 늘 즐거웠을 겁니다. 무엇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랬을 겁니다. 그래서 자꾸 희미해지는 기억을 사랑합니다. 쉰세 살이 되고 쉰네 살이 되어도 두려워하지는 않을 겁니다. 내 목표가 ´책´이 아닌 것을 사랑합니다.




산이하고 강이, 아들과 딸을 앉혀 놓고 말을 꺼냈습니다.


성당에서 버스를 한 대 구입해야 한대, 창문도 오래되어서 보수해야 하고, 어른들은 1인당 10만 원 정도 내기로 했거든.


아이들이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부터 굿네이버스를 통해 한 달 용돈의 일정 부분을 기부하도록 시켰습니다. 내 철학은 빈곤하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다행히 산이와 강이는 오랫동안 아프리카 소녀와 소년을 도왔습니다. 가끔 우리는 아프리카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먹고 남은 것을 건네는 일과 먹기 전에 떼어 건네는 일의 차이를 나도 아이들도 공부했습니다. 시간도 그렇게 쓰려고 노력합니다.


산이는 보름에 한 번씩 5만 원을 받고 강이는 한 달에 5만 원을 용돈으로 받습니다. 거기에서 산이는 4만 원, 강이는 2만 원을 성당에 냈습니다. 일부러 아이들 이름이 적혀 있는 소식지를 가져다 보여줬습니다.




´이름이 보기 좋잖아. ´




집안에 산이 있고 강이 있는 풍경이었습니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루카 17:6




미립자 같은 그만큼이 없어서 날마다 고개 숙입니다. 백만 자를 써보면 그것이 생겨날까 싶기도 하고 백 년을 살면 그 마음을 알까 싶기도 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아버지의 형상을 닮았으니까, 조금은 덜 외롭습니다. 11월은 온유합니다. 살아있는 아들의 얼굴에 죽은 아버지가 겹치고 죽은 아버지의 영혼에 살아있는 아들이 뛰어다닙니다. 하나 그리고 하나, 1과 1, 좋은 사이 11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