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를 내어주고
뭔가 쓰려니까 애잔한 마음이 손끝에서 잔물결처럼 찰랑댄다.
아이들 학교에 보내고 잠시 책상에 앉았다.
장맛비가 다시 시작하는 아침 등굣길에서 아들과 딸은 한껏 기운이 빠진 표정으로 걸어갈 것이다.
1주일을 겨우 기다려 엄마의 퇴원을 맞았는데 하루 지나고 또 엄마가 입원을 한다는 말에 아들은 어젯밤부터 의욕상실이다.
그나마 위안이 됐는지 보고 싶을 때 찾아갈 수 있다는 말에 아들은 두 번 세 번 거듭 확인을 한다.
아침 식사가 흥겹지 않았다.
"엄마가 어디가 아파서 병원에 갈까?
내가 일부러 문제를 내면서 분위기를 깨웠다.
1번 머리, 2번 가슴, 3번 배, 4번 허리, 5번 자궁
처음에는 자세하게 일러줄 생각 없이 병원에 가야만 하는 엄마의 형편을 아이들에게 들려주겠다는 의도였는데 문제를 내면서 도중에 생각이 바꼈다.
그렇지 않아도 '때'를 보고 있었는데 옳거나 싶었다. 이 기회에 정확히 설명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딸아이는 3번 배!
그래도 5학년 아들은 상황을 알고 있어서 5번 자궁.
"그런데 자궁이 뭐야?"
내가 생각했던 질문이 나왔다.
"자궁은子宮, 아들: 자에 집: 궁을 쓰는데 아들, 즉 아기가 만들어지는 집, 궁궐 같은 곳이야."
엄마가 아파서 몸을 돌보고 회복하려고 병원에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야겠는데 아이들 호기심이 '아기'쪽으로 흐른다.
"그럼 엄마는 자궁을 수술한 거야?"
"그렇지, 자궁은 '아기집'이라고 하는데 엄마는 아기집을 떼어내는 수술을 했어."
딸아이가 눈이 커지면서 묻는다.
"그럼 엄마는 이제 아기를 못 낳는 거야?"
나는 이렇게 물어봐주는 녀석들이 고마워서 더 자세히 들려준다.
밥을 먹다 말고 아이들은 엄마의 '사정'을 알고 아프겠다며 그 통증에 공감해준다.
계속 아프면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9살 딸은 엄마를 바라본다.
그렇지 않다고 곧 좋아질 거라고, 그래서 병원에 오늘 또 가는 거니까 시간 잘 보내라고 엄마가 말해준다.
야구를 하다가 손가락을 다쳐 지금도 조심하고 있는데 엄마는 뱃속에 있는 것을 떼어내서 많이 아프겠다며 아들도 거든다.
"그래, 우리 몸은 어느 한 곳 소중하지 않은 데가 없으니까 항상 조심해야 해. 알았지?"
아이들이 학교에서 '비비탄'을 쏘는 아이가 있다면서 조심하겠다고 그런다.
몸이 아픈 것은 어쩔 수 없다.
아프지 않게 지낼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좋은 것이다.
오늘 아침은 뜻밖에 수확이 있었다.
그동안 해야 하는데, 해야 하는데 맘만 먹고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던 5학년 아들 '성교육'을 조만간 시작해도 될 것 같다.
엄마 수술과 입원을 두고 나눴던 대화에서 아빠는 성교육을 잘할 수 있는 힌트와 동기를 얻은 셈이다.
아들은 아무래도 제 엄마 때문이라도 더 잘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이다.
단순한 '호기심'에서가 아니라 아프고 소중한 것이니까 치료도 해야 하고 많이 많이 조심해야 하는 것이라고.
하나를 잃는 것이 아니다.
하나를 내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를 새로 얻어 갖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