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영화다.
성의 없이 보일지 모르지만 정보를 제공하고자 하는 공간이 아니다.
나는 만든 지 오래된 영화를 주로 보기 때문에 어쩌면 다시 이렇게 지나간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전혀 흥미를 끄는 일이 되지 못한다. 새롭기는커녕 이미 충분히 많은 블로그나 사이트에 그 내용이 다뤄진 끝에 더 이상 펼쳐보지 않고 먼지나 쌓여가는 영화가 나는 좋다.
새로 상영되는 영화도 얼마든지 많은 시대다.
사람들의 보폭을 따라잡기에도 정신없는 세상에 10년도 훨씬 지난 이야기를 천천히 되감아 보는 나는 허술하다.
허술한 사람은 아무 때나 켜고 아무 때나 끊다.
방금 나도 '끈다'라고 쓸까, '끊다'라고 써야 할까 망설이다 고쳐 다시 쓰고 결국 덜 어색해 보이는 것을 쓴다.
그런데 아무래도 끈다가 맞는 듯하다.
내일의 기억,
일본 영화다.
그래도 찾아보자. 제작연도 정도는 알아도 무방하지 않나.
2007년 5월 10일 개봉했다.
와타나베 켄은 이제 한국에서도 아는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말이 필요 없는 배우니까 당연한 일이다.
나는 맵시가 좋은 사람이 좋다.
그 맵시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스타일이라고 하면 말하고자 하는 것의 3할 정도만 챙긴 느낌이고 그렇다고 몸매도 아니고 분위기라고도 하기에는 눈에 선명하고 감각적이어서 피할 도리가 없다.
맵시에는 많은 것들이 함께 어울리는 느낌을 주는 어떤 것이 있다.
그것이 어느 나라 말인지 문득 궁금해졌다.
마치 내가 설명할 수 없으면서 좋아라 하는 바람처럼 '맵시'라는 말은 그렇다.
'사에키' 그 이름은 기억할 수밖에 없었고, 뭐라 그래도 극의 주인공이고 젊은 할아버지가 되면서 50에 치매를 앓기 시작하는 우리의 나의 너의 그리고 세상의 아픈 손가락이니까.
그의 아내, '에미코' 나뭇가지에 열매가 맺는다는 뜻을 가진 이름이라고 히구치 가나코는 두 번이나 자기 이름의 뜻을 들려준다.
기억을 잃어가는 그녀의 남편에게 울음을 꾹 누르고서 웃으면서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친절하게 설레게 말해준다.
'내 열매는 당신이야.'
그게 내 뜻이었어하고 속삭이는 눈빛을 놓칠 수가 없어서 숨을 몇 번이나 깊이 들어마셨다.
히구치 가나코는 어디에 살고 있었기에 내 나이 사십 아홉에 처음 보는가.
봤겠지, 봤지만 몰랐겠지. 그러니까 오늘 처음 본 것이지.
사람이 맵시 있으니 격이 바람처럼 일었다.
나에게 불었다.
잘 나가는 광고맨이면서도 인간적이었던 사에키는 마흔아홉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를 흔드는 것들이 무수히 많다.
보라,
너무 많을 것이다.
밥을 먹는 일, 회사에 찾아가는 일, 사람 이름을 부르는 일, 내가 누구인지 잘 아는 일...
따져보면 거의 다 거기에 들어가고 말 것들 뿐일 것이다.
그래서 섬뜩하고 외롭고 난감하겠지.
모른 척 살아왔지만 삶은 고요한 햇살 속에 번뜩이는 재치를 품고 모두를 비춘다.
잎이 떨어지기 시작할 때 나무는 제 앞을 뒹구는 마지막 잎새를 그려가며 나목이 된다.
희로애락이라고 너는 표현하지만 나는 그걸 부를 이름을 아직 찾지 못했다.
슬픔 비슷한 것이거나 아픔 닮은 맛, 그것도 아니면 자꾸 잊혀 가는 통증이 품는 색깔이다.
구원은 없다.
미안하지만 구원은 너무 멀리 있다.
우리가 믿을 것은 술과 먹을 것과 여자, 가끔은 맵시가 없어도 괜찮다고 떠들지만 나는 양보하지 않겠다.
망각은 맵시 있는 에미코 앞에서는 어쩔 수 없어서 저도 미안해하며 지나는 세월이어야 한다.
그는 그의 아내 품에서 완성되는 못생긴 '찻잔'이다.
하지만 잘 구워진 두 번 구워진 홀로 구워진 삶이 구워낸 그릇이다.
좋은 영화다.
그대도 어떻게든 찾아보고 울면 좋겠다.
곧 다가올 하늘이 오늘은 많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