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시(詩) / 이상

시,

by 강물처럼

이런 시(詩) / 이상

역사(役事)를 하노라고 땅을 파다가

커다란 돌을 하나 끄집어내어 놓고 보니

도무지 어디서 인가 본 듯한 생각이 들게

모양이 생겼는데

목도들이 그것을 메고 나가더니 어디다

갖다 버리고 온 모양이길래

쫓아나가 보니 위험하기 짝이 없는 큰 길가더라.

그날 밤에 한소나기 하였으니 필시 그 돌이

깨끗이 씻겼을 터인데

그 이튿날 가보니까 변괴로다, 간 데온데 없더라.

어떤 돌이 와서 그 돌을 업어갔을까.

나는 참 이런 처량한 생각에서 아래와 같은 작문을 지었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 줄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라.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어떤 돌이 내 얼굴을 물끄러미 치어다보는 것만 같아서

이런 시는 그만 찢어 버리고 싶더라.


좋은 책은 다른 좋은 책을 불러준다.

그러는 동안 책은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나를 편안하게 바라본다.

무슨 말이든 좋으니까 한마디 새어 나오길 바라지만 처음과 같이 얼마간은 낯설고 얼마간은 정들었다는 눈짓으로 안녕.

이상의 이런 시를 어디 틈이 있을까 싶어 한 자씩 훑어도 보고 아직 내가 그 뜻을 다 알지 못할까 싶어 피식 웃어도 본다. 손으로는 태연한 척을 하더라도 내 생각이나 마음은 벌써 고봉 孤峰을 향해 톺아간다.

그대는 과연 어느 나이에 그만한 사랑을 품어보기라도 했던가 싶어 내심 같은 사내로서 부끄럽다는 뜻이 검버섯처럼 돋는다. 나는 어서 늙기나 해야겠다고 또 피식 웃기만 하다가 젊은 날 어디선가 보아 뒀던 한 시(詩)를 기꺼이 찾아낸다.


언젠가 물어보리

기쁘거나 슬프거나

성한 날 병든 날에

꿈에도 생시에도

영혼의 철사줄 윙윙 울리는

그대 생각,

천 번 만 번 이상하여라

다른 이는 모르는 이 메아리

사시사철 내 한평생

골수에 전화電話 오는

그대 음성,

언젠가 물어보리

죽기 전에 단 한 번 물어보리

그대 혹시

나와 같았는지를


상사 想思라는 말, 그때는 비겁한 것도 같고 창피할 것만 같아서 나 같으면 찢어버리고 말겠다는, 어떤 시가 되지도 못했던 그 말이 꽃 이름이었다는 것을 알고서도 피식 웃음이 났다. 못난 놈, 못난 놈, 못난 놈 그러면서 웃었다.

김남조의 상사 想思라는 시는 이상의 이런 시를 내 옆에 불러다 주고서 떠났다.

순서가 바뀌었어도 많이 바뀌었다.

그렇지만 않았더라면 나도 사랑깨나 해봤을 성싶은데,

하여간 말이다.

오늘은 순서를 바꿔서 다시 펼쳐 읽었고 또 두 손으로 써보기도 했는데 글쎄, 손맛이 옛날 그 맛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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