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고단함
S는 경찰국 차량반에서 청소 일을 잠깐 했다. 인쇄소, 아이스캐키 장사, 청소... S의 일기는 늘 새로운 노동으로 이어졌다.
1962년 6월 29일
캐키를 팔고 집에 돌아와서 있으니 누나가 와서 경찰국 경리계 차량반에 누나가 부탁한 순경 집에 가서 이력서를 써가지고 가니 내일 아침 10시에 나오라고 해서 차량반을 몰라서 말해준 아저씨 아들과 같이 가서 청소하러 왔다고 하니까 그래라고 해서 한참 청소하다 왔다.
1962년 6월 30일
점심을 싸가지고 회사에 나가서 하루종일 청소를 했다. 경위가 칭찬을 한다. 아주 몸이 고단했다.
저녁에는 금자네 집에서 잠을 잤다. 고단해서 그냥 일찍 잤다.
일기 속 1962년의 S의 모습은 2025년 봄의 내 모습과 겹쳐진다. 나는 웨이팅(입사 대기) 기간에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생각보다 정말 힘들었다. 특히 마감 시간에 홀 청소를 할 때면 손목이 아프도록 빗질을 해야 했다. 버거워하는 내 모습을 보고 엄마는 "알바하더니 웃음을 잃었네"라고 말했다. 노동은 그렇게도 힘들었다. 그래서인지 ‘아주 몸이 고단했다.’는 일기 속 한마디가 더 깊이 공감되고, 뭉클하게 느껴진다.
1962년 7월 13일
점심을 먹고서 두 순경의 밥값 20원 보관
2시경에 혼자서 영화구경 (5원) 자유극장에서 보고 나니 4시 반이었다.
순경들이 어데갔다 오냐고 물어서 괜히 놀러 다녔다고 했다. 영화 제목은 <아들의 심판>
1962년 7월 26일
조반을 일찍 먹고 차량반에 나갔다.
배가 조금 아파서 좀 누워있겠다고 하고서 점심때까지 잤다. 오후에 몰래 영화구경 (자유극장서 내일 없는 그날) 5원 주고 관람했다.
차량반에 있는 한순경이란 순경이 챙피하게 월급을 주내 안주내해서 기분이 나빴다. 오후 일찍 저녁 먹으러 오면서 이발(7원) 했다.
S는 배가 아파서 쉬다가도 영화를 보러 갔다. 너무 성실하고 정직하게만 살았다면 숨 막혔을 일상에, 이런 작은 일탈에서 오히려 인간미가 느껴진다. S는 고단한 노동 중에도 잠시 영화를 보거나, 이발로 기분 전환을 했다. 하지만 노동의 대가가 보장되지 않던 시대의 불안이 무겁게 다가온다. '월급을 주내 안 주내해서 기분이 나빴다.'는 구절을 보며, 그 시절에는 근로계약서 같은 게 제대로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많은 권리가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1962년 7월 30일
월급 탔다. (850원)
1962년 7월 31일
중복이라 매우 더운 날씨이다.
급사 직업을 사표냈다.
S는 무사히 월급을 탔고, 또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길 위에 섰다. 그 무거운 마음이 오늘의 나에게도 전해진다. 나는 이제 막 사회인으로서 걸음을 내딛는 게 두렵기도 하지만, 그 시절 S의 단단함을 본받으려 한다. 그의 일기가 내 앞길에 작은 등불이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