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전부였던 영아기를 거쳐 가며 아이들은 모든 게 새롭고 궁금한 시기를 맞이한다. 그림책은 그런 아이들의 세상을 넓혀줄 수 있는 훌륭한 매개체다. 나는 책을 좋아한다. 글자가 빽빽한 책을 읽기 전, 그림책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따뜻한 그림은 나를 책 속 세상으로 빨려 들어가게 했다. 책 속 모험을 끝내고 나온 후의 여운은 꽤 깊었고, 현실에서도 나는 그림책 속 인물처럼 용감하고,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내가 누구보다도 그림책을 사랑했기에, 그림책이 주는 즐거움과 기쁨을 온몸으로 느껴보길 바랐다는 '2025 그림책이 참 좋아 展' 기획 의도를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전시는 원화 작품 250여 점뿐만 아니라, 초대형 미디어아트, 캐릭터 조형물, 단편 애니메이션, 그림책 도서관, 뮤지컬 쇼케이스 공연 등 다채로운 체험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다. 특히 아이들에게 특별한 경험일 것이다. 책장을 넘기며 상상했던 그림책 속 세상을 입체적으로 만날 수 있다니, 꿈같지 않을까.
나는 전시장을 둘러보며, 작품 설명을 하나하나 읽어나갔다. 국지승 작가님의 작품은 가장 처음 마주한 작품이자, 오랫동안 마음에 남은 작품이었다. '아빠 셋 꽃다발 셋'과 '엄마 셋 도시락 셋'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일하는 부모님이 아이들의 음악회에 참석하기 위해, 소풍 도시락을 싸주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을 담았다. 작품 속 고군분투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나는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고 응원하고 있었다.
어린시절, 나는 엄마와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아빠와는 가끔 휴무 날 시간을 함께했다. 엄마와 재밌게 일상을 보냈기에, 아빠에게 서운함은 없었지만, 아주 어렸을 때는 아빠에게 회사가지 말라고 떼를 쓰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커서 사회에 나오고 보니, 부모님의 입장이 백 배 이해가 된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경제 활동을 해야만 하지만, 어느 업종에 종사하든,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같을 것이다.
아이의 관점에서 일로 바쁜 부모에게 섭섭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찰나의 감정일 뿐, 부모의 깊은 사랑을 아이들도 분명 헤아리고 있다. 만약 부모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늘리고 싶어 속상해하는 아이가 있다면, '아빠 셋 꽃다발 셋'과 '엄마 셋 도시락 셋'을 읽으며 서로의 마음을 다시 한번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꽃에서 나온 코끼리 © 황K, 책읽는곰
이렇게 책은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자신과 타인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황K 작가님의 동화 '꽃에서 나온 코끼리' 또한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이해에 대해 배울 수 있는 든든한 친구 같은 작품이다. 책에 등장하는 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오던 길에 처음 보는 꽃을 발견하는데, 상아 모양 같은 수술이 움직이더니 작은 코끼리 한 마리가 사뿐사뿐 걸어 나온다. 아이가 손바닥을 내밀자, 코끼리가 그 위로 툭 떨어지고, 아이는 코끼리를 정성스럽게 돌봐준다.
꽃에서 나온 코끼리는 작고 연약하지만, 하나의 생명체로서 소중하고 아름답다. 그리고 그런 코끼리를 자신보다 연약한 존재라고 무시하지 않고, 돌봐준 아이의 마음 역시 어여쁘다. 코끼리의 작지만, 긴 코가 아이의 둥근 코와 맞닿아 서로 인사를 하는 듯한 전시 속 원화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미소를 짓게 만든다.
이 작품은 황동규 시인의 '풍장58'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고 한다.
달개비떼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꽃 하나하나를 들여다본다.
이 세상 어느 코끼리 이보다도 하얗게 이쁘게 끝이 살짝 말린
수술 둘이 상아처럼 뻗쳐있다.
...... (중략)
- 풍장(風葬) 58 中
이 시에서도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두 생명체가 나온다. 작고 연약하지만, 구석에서 꽃을 피우는 식물과, 그런 식물을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 화자가 자세히 보지 않았다면, 수술이 상아처럼 뻗쳐있는 꽃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나는 아이들이 눈여겨보지 않으면 모를 아름다움에 대해서 알았으면 좋겠다.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어 줬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은 억지로 강요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림책을 읽고, 친구들과 놀, 좋아하는 것을 하며 서서히 스며드는 것이다. 이번 '2025 그림책이 참 좋아 展'은 그런 소중한 시간을 선물해 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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