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생에 한번은 베토벤을 만나라 리뷰
베토벤은 훌륭한 작곡가다. 그의 곡을 듣고 있자면 어떻게 이런 멋진 음악이 탄생했을지 감탄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음악에는 귀에 착 감기는 명확한 주제가 있고, 그 주제들이 때론 수그러들었다가, 때론 폭발하며 차근차근 피날레로 향해간다. 그것을 따라가며 나는 마치, 견고하게 쌓아 올린 성안을 누비다가, 저 멀리 빛나는 불꽃을 보고 홀린 듯이 쫓아가는 탐험가가 된 기분이었다.
베토벤의 인생과 음악 이야기를 담은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호기심이 생겼다. '베토벤의 삶은 어떠했을까?' 갓 음대를 졸업해 세상에 던져진 나는 하늘 같은 음악 선배님의 인생이 궁금했다. 그렇게 책 '일생에 한번은 베토벤을 만나라'를 통해 알게 된 몇 가지의 사실은 내가 알고 있던 베토벤의 이미지를 새롭게 바꿔주었다.
책에 따르면, 베토벤은 최초의 프리랜서 음악가였다. 현재는 프리랜서 음악인들이 제법 많지만, 지금도 취업과 프리랜서의 삶 사이에서 고민하는 청춘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베토벤은 보장된 실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자신의 실력에 대한 신뢰가 있었겠지만, 당시 음악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출세인 궁정악장을 배제하고, 자유로운 음악을 위해 프리랜서를 선언한 베토벤의 선택은 가위 도전적이다.
베토벤의 음악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 또 하나 있다. 그는 작품 번호를 직접 매겼다. 고전주의 작곡가들의 작품 번호가 후대 학자들에 의해 붙여진 것이 대부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일이다.
그가 고심 끝에 고른 첫 번째 작품은 "피아노 삼중주, Op 1"이다. 사실, 이 곡이 처음으로 출판된 곡은 아니었지만, 베토벤은 대중에게 자신을 널리 알릴 곡으로 이 곡을 선택했다. 만약 이 곡을 들어보기로 마음먹었다면, 베토벤이 왜 이 곡에 첫 번째 작품 번호를 부여했는지 추측하며 들어보기를 권한다.
내가 느낀 피아노 삼중주는 활기차고 우아한 멜로디에, 작품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어도 편안하게 듣기 좋았다. 연주 난도도 높지 않아 아마추어 연주가도 재밌게 연주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만한 곡이라는 베토벤의 판단은 탁월했다. 3쇄 인쇄라는 의미 있는 결과와 함께 베토벤은 입지를 굳건히 다졌다.
내가 베토벤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이미지는 괴팍함, 그리고 예민함이었다. 하지만, 베토벤의 곡 중 "론도 카프리치오, Op. 129"는 그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귀엽고 재치 있는 곡이다. 이 곡은 "잃어버린 동전에 대한 분노"라는 부제로 더 유명한데 사실, 이 부제는 베토벤의 비서 쉰들러가 붙였을 가능성이 크다. 어쨌거나, 제목과 곡의 분위기는 꽤 잘 어울린다. 제목에 대입해 잃어버린 동전을 찾기 위해 집 안 구석구석을 뒤지는 베토벤을 상상하면 웃음이 나온다.
우리도 일상에서 사소한 물건을 잃어버린 적이 있지 않은가. 어디에다 뒀는지 도무지 기억을 못 해 찾아다니다 보면, 슬슬 화가 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겨우 그 물건을 발견하여, 손을 뻗었는데, 떼굴떼굴 깊숙한 곳으로 굴러갔을 때의 분노, 딱 그 정도의 허탈하고, 애타는 감정이 피아노 위에서 춤을 추는 것만 같다. 베토벤의 위트와 상상력은 단순히 공감을 넘어, 평범한 순간들 속에서도 특별함을 발견하게 했다.
앞서 언급한 그의 이미지에 대해 더 이야기해 보자면, 확실히 베토벤은 예민하고 까칠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작곡이 잘 풀리지 않으면 갑자기 책상에 머리를 들이받는다거나, 악보를 집어던지기도 했고, 청소 상태가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가정부에게 쏘아붙이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더군다나, 베토벤에게 찾아온 청력상실은 일상에서도, 음악 작업 시에도 큰 고통을 주고, 그의 예민한 성격을 극대화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고통과 예민함이라는 키워드에만 초점을 맞췄을 뿐, 그가 고통을 어떻게 마주하고, 얼마나 용감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냈는지에 대해서는 간과했던 것 같다. 책의 103페이지에 베토벤의 이런 말이 나온다.
나를 붙드는 것은 예술, 오직 예술뿐이었다. 나의 예술적인 재능을 모두 드러내기 전에는 '죽음’이 천천히 다가왔으면 좋겠다. 죽음이여 올 테면 와보라. 나는 용감하게 그대를 맞이할 것이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
이 말을 기점으로 베토벤은 무수히 많은 걸작을 쏟아냈다. 그중에 내가 특히 좋아하는 작품은 대학교 오케스트라에서 직접 연주하기도 했었던 "교향곡 5번, 운명"이다. 그가 정확히 무슨 생각을 가지고 이 곡을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청력을 잃어가던 당시의 상황으로 미루어보아, 이 곡에서는 그의 고뇌가 깊게 느껴진다.
1악장은 유명한 네 음 "빠바바밤"으로 시작한다. 우리는 무언가 일이 틀어졌을 때 곡 전체를 관통하는 동기 "빠바바밤"을 흥얼거린다. 그가 처음 청력 약화를 느꼈을 때도 비슷한 멜로디가 머릿속에 울려 퍼지지 않았을까?
1악장이 다소 우울한 분위기와 함께, 고통에 투쟁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고 있다면, 2악장에서는 이와 대조되는 평화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3악장에선 다시 1악장의 주제가 등장하며 투쟁이 시작된다. 나는 개성 넘치는 3악장을 특히 좋아한다.
관악기가 메인 멜로디를 연주하며 곡은 본격적으로 끓어오르고, 현악기가 응답하듯 파트별로 자기 목소리를 낸다. 이는 첼로와 베이스를 필두로 비올라 바이올린이 이어서 빠른 페시지를 연주하면서 극대화된다. 당시 연주를 준비하며 다들 이 응축된 에너지를 합 맞추어 전달하기 위해 반복해서 연습했던 기억이 난다.
이 넘치는 에너지는 4악장을 위해 잠시 사그라드는데, 부드러운 목관 선율을 기점으로 더욱 차분해진 음악은 4악장 초반부터 점점 끓어올라, 금관의 힘찬 시작으로 폭발한다. 이렇게 악장마다, 아니 악장 내에서도 끊임없이 대비를 이루는 이 교향곡에는 베토벤의 불안한 심리가 묻어난다. 절망하다, 희망을 품고, 다시 또 무너지는, 그런 들쭉날쭉한 시간이 베토벤의 인생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피날레를 들어보면 결국 베토벤이 추구하고자 했던 마음가짐은 고난을 넘은, 음악에 대한 환희임을 짐작할 수 있다.
나는 어렸을 적 클래식 작곡가들의 전기를 읽으며,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연습하고 있던 곡의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그들의 일생을 읽어나가며,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책장을 덮었고, 내 영감의 한 조각이 된 그들의 삶은 금세 머릿속에서 잊혀갔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성숙해져서일까? 이번 베토벤의 이야기는 나에게 다소 색다르게 다가왔다. 음악가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베토벤의 삶에 공감했다.
오늘부로 나는 이 책을 다시 읽어보려고 한다. 저자가 직접 선별한 무대 영상의 QR코드를 연결하여, 두 번째 감상부터는 한 장마다 넉넉한 시간을 들여, 음악과 함께 글을 읽어나갈 것이다. 그가 삶에서 찾고자 했던 환희를 나 또한 찾아가고 싶다. 베토벤과 그의 음악을 오롯이 느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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