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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린 May 31. 2019

대안교육의 시작

그녀가 말하는 직접 경험한 대안교육에 대하여


주변 사람들은 알겠지만 나는 14살, 중학교 1학년을 마지막으로 일반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 그 후에는 홈스쿨링를 하고 대안학교를 다녔다. 온전히 나의 선택이었다. 물론 그 배경엔 부모님의 적극적인 지원과 넓은 정보력을 비롯, 두 분만의 확고한 교육 철학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딱 한달이 지난 후 나는 학교를 그만뒀다. 한국의 교육법상 중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이라 사실상 '자퇴'는 불가하다. 그래서 부모님과 함께 학교로 가서 선생님과 상의 후 ‘정원 외 관리 대상’ 처리가 되었다. 단어의 어감이 썩 좋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의 법이 그러하다고 하니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자발적 '정원 외 관리 대상'이 된 후 대안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덕분에 어릴 때부터 그 나이에는 하지 못할 다양한 경험들을 할 수 있었다. 중고등학교 도합 6년이니, 그 기간이 꽤나 길어서 하나하나 일일이 나열하기 벅찰 정도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정말 시대를 앞선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았었다. 현재 한국 사회의 여러 교육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시도되는 다양한 교육 방법들과 정말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중요한 삶의 가치들을 찾기 위한 도전을 나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경험했으니 말이다. 물론, 시대가 바뀐 만큼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추구하는 근본은 같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때는 어려서 그 가치를 미처 몰랐다는 거다. 좋든 싫든, 자의든 타의든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열심히 해내긴 했지만 돌이켜보면 어떻게 그 많은 것을 다 했나 싶다.


어쨌든 그렇게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검정고시를 보고 학창 시절 전부를 홈스쿨링과 대안학교 등의 대안 교육권에서 자랐다. 1990년대 중반부터 우리나라에 대안 교육이 등장하고 대안학교라고 하는 것은 1990년대 후반에 본격적으로 만들어졌으니, 2000년대 초반에 대안교육을 받기 시작한 나는 쉽게 말해 대안교육 1세대인 셈이다. 어느덧 십년하고도 몇 년이 훌쩍 지났다. 그 어리던 중학생은 성인이 되었다.


이런 나에게 요즘 많은 사람들이 질문을 한다. 질문은 대개 2가지 정도로 추려진다. 그리고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부모들이다.


* 첫 번째. 학교를 그만 둔 것을(대안교육을 선택한 것) 후회하지 않나요?

* 두 번째. 학교를 안 다니면 뒤처지지 않나요? (사회성, 교육진도 등 다양한 부분에서)


두 질문 모두 부모의 걱정과 불안에서부터 비롯된 것 들이다. 나의 대답은 전부 NO다. 후회한 적도 없고, 뒤쳐진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물론 주관적이고 객관적인 시선 모두를 따져보고 내린 답이다.


대안교육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나요?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변함없이 "후회하지 않는다"이다. 당연히 힘들고 외로울 때도 있었다. 지금이야 공교육이 무너지고 있다는 우려 속에서 대안교육이 주목을 받고 있긴 하지만, 내가 대안교육을 받을 때만 해도 주변의 시선이 마냥 곱지만은 않았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남들 다 학교 가는 시간에 혼자 버스를 타고 서울로 수업을 들으러 가는 길이었는데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학생이 학교 안 가고 어디 가"라고 물었다. 그리고는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옆에 있던 다른 아주머니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문제아여서 학교에서 잘렸나?"라는 말을 했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당연히 다 들렸다. 코 앞이었으니까. 그때는 어린 나이라 상처도 받고 화도 났지만 늘 겪던 익숙한  반응이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이렇듯 나의 어린 시절엔 틀에 박힌 시선들이 항상 따라다녔다. 물론 처음엔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 봤자 이제 막 중학생이 된 사춘기를 겪는 14살짜리에 불과했으니까.


내가 선택한 결정이었지만, 남들과 다른 삶을 사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친구들 학교 다닐 때 나는 내가 배우고 싶은걸 배울 수 있고, 더 많이 경험하고 많이 돌아다닐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특별한 사람이야’라고 생각했지만, 학교에서 교복을 입고 나오는 또래 아이들을 보며 남몰래 뒤에서 부러워하기도 했고, 불안의 무게를 견디며 외로움과도 씨름을 해야 했다. 특별함이 특이함으로 다가오는 순간, 그 괴리감은 사춘기 소녀가 견디기에는 상당히 큰 고통이었다.


내가 아쉬워했던 것은 딱 하나였다. 내가 겪지 못했던 학창 시절에 대한 동경이다. 반대로 공교육을 받는 아이들은 대안교육에 대한 동경이나 환상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걸어가지 않은 길에 대한 동경이 있다. 하지만 동경은 동경으로 남겨둘 때 가장 아름답다. 학창 시절에 대한 추억이라는, 내가 겪지 못했던 것에 대한 결핍이나 아쉬움은 있었지만, 생각해보면 나에게 있어 그렇게 큰 부분을 차지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단지 '학교'라는 틀만 없었을 뿐 다른 의미로 나만의 '학창 시절의 추억'이 분명 존재했으니 말이다. 내가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는 이유이다. 또한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할 거냐고 묻는 사람들에게도 "그렇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 이유는 그 선택으로 인해 잃은 것보다 얻은 게 훨씬 많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사실 입시 경쟁이 치열하고 학구열이 높은 대한민국의 사회 구조상 공교육의 틀에서 벗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학생 본인뿐만 아니라 부모 모두에게 매우 큰 용기가 필요하다. 어느 하나를 선택하면 어느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그것은 곧 자신의 선택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무엇을 선택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선택 이후에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느냐이다. 삶이 그렇듯 그 어떤 선택도 탄탄대로만 펼쳐지지 않는다. 모두 나름대로의 어려움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뜻대로 되지 않은 일들도 있을 것이고, 예상치 못한 변수들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보지 않은 길이기 때문에 두렵고 불안한 게 당연하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 또한 선택에 대한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그 선택에 대한 결과물 또한 책임져야 한다.


'대안 교육' 영어로 alternative (대안, 선택 가능한 것)이라는 뜻이다. 정해진 길로만 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 방향을 설정하고 갈지를 본인이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다양한 선택지 속에서 보다 현명한 결정을 하기 위해 대안교육을 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반학교를 안 다니면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을까요?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 No인 이유는, 뒤쳐지고 말고를 결정짓는 것이 어떤 교육권을 선택하느냐와 같은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회성 같은 경우, 홈스쿨링을 하면서 집에만 있으면 대인관계나 의사소통 능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들을 한다. 그러나 중요한 핵심은 홈스쿨링이라는 표면적인 환경보다는 그 안에서 아이가 어떤 교육을 받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일반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아이, 못 어울리는 아이 모두 존재한다. 홈스쿨링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상대적으로 다양한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공교육 시스템이 사회성을 기르는데 조금은 더 유리할 수 있다. 하지만 홈스쿨링이라고 해서 계속해서 집에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회성은 교우관계뿐만 아니라 부모와의 관계 그 외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도 형성될 수 있다. 오히려 폭넓은 사회성은 다양한 대인 관계 경험 속에서 만들어진다.


대개 두 번째 질문을 하는 이유는 대안 교육과 홈스쿨링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람들이 가장 크게 오해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홈스쿨링을 하면 집에만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홈스쿨링은 말 그대로 'home School' 아이의 교육을 부모가 맡아서 한다는 뜻이다. 교육의 권한이 학교와 선생님이 아니라 부모에게 있다는 것이다. 찾아보면 아이를 교육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집에서 할 수도 있고, 밖에서 할 수 있다. 외부의 다양한 것들을 활용할 수 있다. 따라서 부모가 얼마나 많은 양질의 교육 정보를 알고 있고, 아이에게 다양한 교육을 시키기 위해 노력하느냐가 중요한 변수이다. 이처럼 올바른 홈스쿨링을 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것은 부모가 아이의 교육을 책임진 이상 부모 또한 더 많은 노력과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다 보면 부모가 아이에게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교육방식이 아닌 긍정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함께 성장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교육 진도'에 대한 문제는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교육진도가 뒤처지지 않냐고 물어보는 부모의 대부분은 교육의 결과가 대학 입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솔직히 말하면, 대한민국에서 대학교를 보내기 위해서 가장 안정적은 방법은 확실하게 시스템이 잡혀있는 공교육권에서 아이를 교육시키는 것이다. 입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공교육 안에 있을 때 훨씬 더 안전하다. 왜냐하면 한국은 오래전부터 교육뿐만 아니라 사회의 전반적인 흐름 자체가 큰 틀에서 보면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에서 한 번 벗어나면 다시 안으로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교육의 목표가 단순히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지성과 영성 같은 내적인 부분에까지 초점을 맞춘 올바른 인간성 확립에 있다면, '교육 진도'에 대한 개념 자체도 바뀌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대안교육의 핵심은 삶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모든 부분에 대한 균형 있는 교육에 초점을 두고, 아이의 특성과 발달 단계에 맞춘 개별적인 교육 진도가 필요하다.


대안교육이 처음 시작된 미국의 대안교육에 대한 정의와 발생 이유를 보면  '적자생존의 가치가 강조되고 기존 질서를 일방적으로 주입시키는 학교에 반기를 들어 예술과 실용, 학문, 영성을 조화롭게 성장시킬 수 있는 전인교육을 추구'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참고:네이버) 대안학교는 그러한 대안교육을 실시하는 곳이다. 그래서 각 대안학교마다 설립이념이나 철학적 배경의 색깔이 뚜렷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처럼 대안교육을 선택하는 부모와 아이는 어떠한 삶의 가치관에 우선순위를 둘 것인지를 먼저 함께 점검한 후, 그것을 중심으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당연히 처음에는 공교육의 문제점에 대한 대안을 찾기 위해 대안교육을 선택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입시 경쟁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택한 차선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어버리는 순간 공교육이든 대안교육이든 겉으로 드러나는 방법론적인 접근만 다를 뿐, 결국 입시 경쟁에서 벗어날수 없게 된다. 입시를 목표로 하면서 다른 길을 걷는다면 부모와 아이 모두 더 불안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대안교육에서 좋은 경험을 했다고 해서
무조건 해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절대 섣불리 선택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싶다.

선택이전에
'우리가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은 무엇인가?'
'왜 그것이 중요한가?'를 먼저 명확히 정립한 후,

'그 가치관을 위해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을 어떻게 교육시킬 것인가?'를
차근차근 생각해보고 교육의 방향성을 결정해야한다.

 그리고 만약 대안교육을 선택했다면 그것에 맞는 교육 철학을
새롭게 재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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