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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린 Dec 10. 2019

왜 읽으세요?

'호모 부커스'를 읽고

호모 부커스의 한 파트를 인용해 나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책의 저자와 비슷하게 나 또한 스스로의 이미지를 너무 확고하게 만들어 놓은 탓일까. 사람들은 내가 책도 엄청 많이 읽고, 무언가 의미 있는 일에 시간을 굉장히 많이 쏟고 사는 줄 안다. 재미있는 사실은 내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지만 작은 팩트에 사람들의 생각이 얹힌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물론 나도 누군가가 구체적으로 묻기 전에는 자세히 말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도 있다. 사람들은 미리 짐작하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집어가면서 말해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고백 하나 하자면, 나는 남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많은 양의 책을 읽지 않는다. 그 양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하루 종일 책을 붙들고 시간만 나면 책을 읽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얘기이다. 필요에 의한 책과, 내가 읽고 싶은 책. 딱 이 정도로 나눠서 읽는다. 쉽게 말해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 읽는 책도 존재한다는 뜻이다. 흔히 '취미가 뭐예요'라고 물어보면 '영화보기랑 책 읽기요.'하고 답하곤 하는데, 나의 취미에는 이 두 가지 이외에도 수 없이 많고, 시간상으로 따지고 보면 영화나 드라마, 예능을 보는 것, 또는 글을 쓰거나 공상에 잠기는 일에 할애하는 시간이 월등히 많다. ‘뭐야, 나랑 똑같네’라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다. 나도 남들과 비슷하게 ‘책을 읽어야지’ 생각하고 일부로 시간을 투자하는 편이다.


잠시 어릴 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주변 환경에 항상 책이 많았다. 부모님이 책을 많이 읽으시기도 했고, 일찍이 ‘독서법'과 같은 교육을 받아왔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야 감사하게 느껴지는 것들이지 그 당시만 해도 타의에 의해 반 강제적으로 책을 읽고, 글을 써야 하는 환경이 나에게는 지옥이었다. 정말 무척이나 싫어했다. (굉장히 많은 책을 읽었는데, 제대로 기억나는 책이 별로 없을 정도다. ) 


초등학교때부터 다니던 독서 학원(편의상 학원이라 칭하겠다.) 입구에는 안중근 의사가 쓴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 [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이라는 문구가 걸려있었는데 우리는 매일 의식이라도 하듯 그 문구를 읽고 들어가야 했다. 그 당시에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라는 의미를 가진 이 글 이해가 될 리가 없었다. 오히려 책을 읽으면 엉덩이에 가시가 돋는 것 같았다. 그래도 시간이 오래 지난 지금까지 저 문장이 잊히지 않는 것을 보면 꽤나 강렬했던 모양이다. 어쨌거나,이러한 환경 덕에 유년시절 거쳐 청소년 시기가 되었을 때는 오히려 책에 대한 반감이 생겨서 한동안은 책을 멀리하기도 했다. 나에게도 '책 읽기'가 지긋지긋하게 느껴진 시절이 분명 존재했다. 그 탓에 '독서'에 대한 중요성과 필요성을 느끼고는 있었지만, 선뜻 나서서 다시 시작하기 쉽지 않았고, 습관으로 만들기에는 더더욱 어려웠다. 


아무리 강제로 하라고 한들 스스로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쉽게 행동에 옮기기 어렵다. 한동한 반항심에 책을 멀리하다가 언제부턴가 갈증이 일었다. 지적 욕구와 표현의 욕구, 그리고 스스로가 부족한 인간이라는 것을 느끼는 순간 책을 다시 손에 잡았던 것 같다. 그런 갈증에는 약간의 허영심도 존재했다. '책 읽으면 뭔가 엄청난 것을 얻고  대단한 사람이 될 것 같은’ 생각도 없지 않아 있었다. 이런 생각을 뒤늦게 하고 나서 다시 책을 손에 들었을때, 불행 중 다행히도 책 읽기의 시작이 어려웠을 뿐 시작하고 나니 생각보다 수월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어릴 적 반 강제로 해왔던 학습들이 아무 의미가 없진 않았던 것 같다. 시작이 어찌 되었든 지금은 꽤나 잘,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읽고 있는 중이다. 아마도 그 이유에는 지적 허영심의 충족보다는 처음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책을 통한 희열과 보람, 재미를 같이 느끼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어쨌거나 나는 '책 읽기'를 스스로 다시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시작한 지는 따지고 보면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늘 부족하다 느끼고  최대한 일상에서 책을 가까이하려고 한다. 정확히 말하면 나의 이러한 필요를 채우기 위해 독서모임을 만들고, '책과 글'이라는 매개체로 사람들을 만나려고 하는 걸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배우고, 끊임없이 채우기 위한 장치를 스스로 심어 놓은 셈이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다르게 말해서 '책'이라고 하는 것을 두 가지 의미로 정의하는 편인데, 첫 번째는 나의 상상력과 사고를 자극하는 일종의 백과사전 같은 역할이고, 두 번째는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위로제 역할이라는 것이다. 
 

첫 번째 이유에 대해 조금 더 설명을 보태자면, 책을 읽으면서 넓혀지는 사고와, 상상력(공감 능력을 포함한 모든 것)을 스스로 경험하기도 했고, 글을 쓰는데 많은 영감을 받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잘 쓰기 위해서 는 잘 읽어야 한다고 했는데, 정말 나는 말 그대로 ' 잘 쓰기' 위해 책을 읽는다. 처음부터 이런 마음가짐으로 책을 대하다 보면 책에 있는 단어 하나, 문장 하나들을 굉장히 깊이 읽게 된다. 그리고 더불어 깊이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작가의 생각에 나의 생각을 더하게 되는데 그런 생각들은 세상과 타인에 대한 궁금증으로 까지 확장이 된다. 이런 확장으로 인해 그런 걸진 몰라도 최근 들어 부쩍 느끼는 것인은 책을 읽을수록 따뜻한 사람이 되고싶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책 읽기는 나에게 있어서 문장력과 사고력을 키우기 위한 트레이닝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두 번째로, 나는 '글'이라고 하는 것에 위로를 많이 받는 편인데, 글이라고 하는 것은 누군가가 읽어줄 때 비소로 그 가치를 증명하게 된다. 때문에 내가 힘들 때 글을 쓰는 것이고, 쓰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누군가의 글을 읽으며 공감한다. 그래서 에세이나, 짧은 글귀들부터 시작해서, 위로를 주거나 삶의 진리를 알게 해주는 글을 일부로 찾아서 읽는 편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위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다.


필요에 의한 독서이든, 좋아서 하는 독서이든 그 이유가 무엇이 되었는 나는 '책 읽기'의 가치를 어느 순간부터 굳게 믿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때로는 읽기 벅찬 책도 도전해보려고 하는 편이다. 스스로에게 버거운 것을 소화해 내는 것이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계속해서 느낄 갈증을 해소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뭐든 읽어 보라고 권한다. 그게 동화가 되었든, 짧은 시집이 되었든, 우선 책을 펴보라고 한다. 24시간 중에 30분 정도 할애한다는 것만으로도 본인의 하루를 의미 있는 하루로 만들어준다면 그 정도의 투자는 해도 되지 않을까. 
 

-  인용 및 참고 ' 호모 부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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