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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린 Jan 03. 2020

왜 인문학을 해야 하는가?

인문학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정의가 있지만, 나에게 인문학이라고 하는 것은  오늘보다 내일,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고민하고 다양한 시각으로 '사고'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일상에서부터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령, 쉬운 책이라도 한 권을 읽어 보려고 시도를 해본다던지, 지하철 역에 붙어있는 문장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던지, 또는 하루에 단 십 분이라도 자신에 대해 질문을 던져 보거나, 하루를 마무리 하는 일기를 쓴다거나 하는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사소한 것들로 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인문학적 사고'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삶과 전혀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쉬운 것조차 외면하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다. 정확히 말하면 싫어한다기보다는 이러한 생각 자제가 불편하고 낯설며, 무가치하다고 느끼는 감정이 지배적이다. 그런 사람들이 묻는다.


"인문학을 왜 해야 하나요?"




21세기가 되어서, 4차 산업 혁명과 더불어 AI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부터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는  ‘인문학’에 대해 많은 관심을 쏟고있다. 가히 인문학 열풍이라 불릴 정도로 관련된 다양한 서적과 프로그램 등, 그것들을 넘어서 새로운 정의들까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인문학에 관심을 갖는 것일까? 


과거에 비해 삶의 질이 높아지고, 손가락 몇 개만 움직이면 방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에서 그 반대의 개념이라 불려도 무방한 인문학이 신기하리만치 그 가치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미래 인재가 갖춰야 할 핵심 요소 중 상위에 ‘인문학적 사고’가 들어가는 것을 것을 보면 인문학은 더 이상 특정 계층에만 적용되거나 학문적으로만 접근해야 하는 분야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인문학이 모든 것의 정답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 일어나는 현상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그것은 바로 인문학이 인간의 가치를 가장 잘 증명할 수 있으며,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언제나 음과 양, 빛과 어둠이 동시에 존재했고, 인간은 그 안에서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길을 찾는다. 따라서 사람들은 과학 발전이 발전함에 따라 과학이 침범할 수 없는 인간 고유성에 자연스럽게 눈을 돌리게 된 것이고, 그것이 곧 인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인문학은 과거 귀족들의 학문으로 알려져 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 때는 ‘자유과’라고 하여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7가지 교양을 배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 안에는 , 자연과학, 사회과학, 예술, 철학, 역사, 수학, 문학 등 방대한 것들의 포함되어 있었다. 중세 시대에는 교양이 없는 사람은 천박하게 여길 정도로 인문학은 삶에 있어 아주 중요한 과목들이었다. 과거의 사람들의 인문학을 중요한 것으로 여겼던 또 다른 이유 중에 하나는 예로부터 인문학은 다양한 방면에서 비판적인 사고와 풍부한 상상력을 키워주는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인문학은 생각하는 힘을 길러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고, 생각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의 삶에 주체성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그 때문일까? 인문학의 중요성은 권력계층에 있던 지배자들이 더 빨리 알아차렸고 그 덕에 역사적 사실만 보아도 많은 국가의 지배계층에서는 시민들과 백성들에게 생각할 힘을 길러주는 책과 같은 다양한 문학 작품들을 강제로 금지하는 사건들의 수차례 발생하기도 했다. 


내 생각에 현 사회도 과거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본다. 방법만 변했을 뿐이지 급변하는 세상 속에 우리는 알게 모르게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김경일 인지심리학 교수는 인간은 불안과 결핍, 불편함으로 부터 성장하며 성숙해지지만 반대로 불안과 결핍과 불편함으로 인해 끊임없이 자기 합리화를 하고, 현재에 안주하는 것을 택하기도 한다고 했다. 어쩌면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길 포기하는 길을 선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주어진 정보에 세뇌를 당하고, 그 안에서 완벽한 안정감을 누리는 것에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인문학의 열풍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에 관심을 갖지만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이유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을 과거와 같이 학문적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인문학이라고 하는 것은, 앞서 말했듯이 일상 속에서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매일매일 조금씩 쌓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문학의 중심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가 아니고,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그 말은 즉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이 고가의 물질을 소유하거나, 단순히 지식의 양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미 모든 사회와 인간은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욕망으로 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의 결과물이 과학 발전이고, 그것의 결과물이 지금의 세상이다.


비판적인 사고를 통해 규칙을 깨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힘과, 공유하고 공감하는 것은 인간만이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창조성과 사고의 힘이 현시대가 가지고 있는 기술과 균형 있게 조화를 이룬다면 개개인의 삶의 질이 한 단계 더 높아지지 않을까?




앞으로 우리는 어떤 삶을 택할 것인가. 현재에 안주하며 생각하기를 멈추는 삶을 택할 것인가에 아니면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해 조금은 불편하고 어색하지만 다양한 사고를 하는 삶을 선택할 것인가?


인류는 지금 그 기로에 서 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것이 우리가 인문학을 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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