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린 Feb 11. 2020

여행을 통한 경험 소비자들

우리는 무엇에 열광하는가?


88 올림픽이 지나고 대한민국은 국제화가 되면서, 그다음 해인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에 출생한 세대들은 자연스럽게 해외여행 자유화를 보다 직접적이고 적극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무엇이든 빠르게 정보를 얻고, 쉽게 습득할 수 있는 청년 세대들은, 글로벌 시대에 맞춰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장벽 또한 상당히 낮은 편이다. 무엇보다 신선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니즈가 높다.

그 이유는 밀레니얼 세대들은 기성세대들에 비해 소유 소비보다 경험 소비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행복에 관한 연구 결과 경험 소비가 소유 소비보다 행복지수가 높은 것으로 나왔고, 연령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밀레니얼 세대에 가까울수록 그 수치가 높게 나타났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경험 소비를 가장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회사에 연차를 붙여서 라도 일 년에 한 번 이상은 꼭 해외여행을 가려고 해요."

"저는 대학 취업 대신 세계여행을 택했어요. 그게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휴가 때 여행은 필수죠. 재충전의 시간이랄 까요."
"휴학하고 여행 가려고요. 지금 아니면 언제 해보겠어요."

여기저기 각자 다른 이유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한국은 인구의 3분의 2가 매년 2회 이상 해외여행을 갈 정도로 여행 전성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그만큼 SNS에서 물밀듯이 쏟아져 나오는 다양한 여행기는 일종의 상대적 발탈감을 불러일으키도 한다.  그런 감정을 느끼면서도 밀레니얼 세대들은 여행을 꿈꾸고, 선호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을 위해 여행을 하는가? 그리고 왜 여행에 열광하는가? 그 이유는  밀레니얼 세대들은 조직이나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존재감보다는 자신의 '개인적인 삶'에 대한 보존 욕구가 높기 때문이다. 지금 그들에게 여행은 단순히 소비하고 즐기는 의미, 그 이상의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개인주의적 삶을 추구하는 밀레니얼 세대만의 결과라고 볼 수는 없다. 시대의 흐름과, 변화에 따라 만들어진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볼 수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 안으로 주저 없이 뛰어는 드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패러다임을 창조해 내는 것. 그것이 지금 밀레니엄 세대들이 해야 하는 일이며, 앞으로 마주해야 하는 일이다.





나는 그 누구보다 대학교를 열심히 다니던 학생이었다. 남들보다 뒤늦게 입학한 대학교는, 나에게 왠지 모를 목표의식이 생기게 만들었다. 이왕 다니는 대학교라면, 그 안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다니자 라는 것이 나의 목표였고, 그것을 가장 잘 이룰 수 있는 것은 과대, 장학금 등으로 나의 노력이 증명되는 활동들을 하며 대학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소위 말하는 스펙 쌓기의 일부분이었다. 그 덕에 대학 생활은 나에게 신입생의 풋풋함을 느끼기도 전에, 하루라도 빨리 완벽하게 졸업을 해야 끝이 나는 과제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그래서 대학생 때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한다는 '휴학'은 나의 인생 계획서에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였다. 그렇게 시험과 학점의 굴레 속에서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스스로에게  무엇을 위해 대학을 다니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꿈꾸던 진로와 관련된 학과에 진학했기 때문에 성적에 맞춰 진학한 다른 학생들에 비해 미래와 대한 갈등은 비교적 적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대학'이라는 제도 자체에 의구심이 들었다. 내가 지금 대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과정들이 비싼 등록금을 내고 배울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었다. 처음 대학에 진학하겠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하나였다. 대학교에 가면 내가 원하는 분야에 대해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을 것 같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작 대학생활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더 많았다. 개인의 삶과 미래를 위한 위한 창조적인 활동이나 준비를 하기보다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 경쟁하며, 그저 그 안에서 불안해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런 불안은 오히려 대학생이라는 타이틀에 스스로를 더욱 강하게 묶어놓기도 했다.


스스로를 우물 안에 가둬 놓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는 내 삶의 본질에 대한 궁금증이 함께 커져갔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이것은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이 맞는가?"에 대한 질문들이 연이어 올라왔다.


그렇게 휴학과는 거리가 멀었던 내가 과감히 휴학계를 내고 1년간 학교로부터 떨어져 있었다. 휴학 후 가장 먼저 세웠던 계획은 긴 여행을 떠나는 것이었다. 그 무렵 우연히 남미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에 대한 사진을 보게 되었고, 단 하나의 사진으로 나는 단 일말의 고민도 없이 남미 일주를 나의 첫 장기 여행으로 계획했다. 어릴 적부터 여행을 많이 다니긴 했지만 혼자의 몸으로 두 달이 넘는 장기여행은 처음이었다. 다행히 여행에 대한 두려움이나 걱정은 없었다. 이왕이면 남들이 쉽게 도전 할 수 없은 곳으로 가보자라는 무모함과 도전정신이 더 크게 작용했다. 앞으로 마주하게 될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더 컸다.


여행을 가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금을 모르는 일이었다. 사람이 무언가에 대한 꿈을 꾸고 그것에 미쳐 액션을 취하면 그 에너지는 실로 엄청나다. 돈을 잘 모으지 못하던 내가, 매번 쓰기 바빴던 내가, 목적과 꿈이 생기니 소비의 패턴이 바뀌고, 마음 가짐이 바뀌었다. 약 8개월 동안 밤낮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르기 시작했고, 더 큰 변화는 일을 하는 시간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후 나는 3개월 동안 남미 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다녀온 후 사람들은 묻는다, 무엇을 얻었느냐. 무엇을 배웠느냐. 그럴 때마다 나는 답한다. "가보세요. 말로는 전달이 안돼요. 직접 경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어요." 사실 어느 하나를 명확하게 정의 내릴 수 없는 것이 여행의 묘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계속해서 여행을 떠난다. 정의 내릴 수 없는 그 경이로움과 깨달음을 위해 떠난다. 나 또한 그 후로 수도 없이 여행을 많이 떠났으며, 여전히 떠나는 중이다. 지금 나에게 여행은 삶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하나의 중요한 테마가 되었다.


굳이 무엇을 배웠느냐 라고 물은 질문에 대한 답을 하자면 여행을 통해서 나 자신에 대한 알아차림,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이해, 타인에 대한 공감, 창조성, 도전정신, 인내력 등 우리가 흔히 인간에게 필요하다고 하는 중요한 요소들을 배워 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배움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고 느끼는 것에 정도가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단순히 저런 단어로만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확실한 것은, 무엇이 되었든 기존의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에서 마주하는 경험들을 통해 저마다의 방식으로 얻어오는 큰 깨달음이 있다는 것이다.





여행을 즐기는 이삼십 대 청년들에게 조사한 결과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여행을 통해 다른 나라의 문화를 배우고, 다양한 삶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며 두 번째는 이러한 경험들이 곧 삶에 대한 배움으로 이어지며 자신들의 삶에 보다 직접적으로 경향을 끼치기 때문이라고 한다.


"경험 소비. 본인의 소비를 통해 경험을 살 수 있는 것."


그렇기 때문에 경험 소비는 소유 소비와는 달리 소비자의 정체성, 가치관 등이 크게 작용한다. 그리고 그것은 반대로 말하면 경험 소비가 어떤 경험을 소비하느냐에 따라 개개인의 정체성 확립에 도움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개개인마다 소비에 대한 기준은 다르지만, 확실한 것은 밀레니얼 세대들은 경험 소비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있다는 것이고, 그 뜻은 다른말로 경험에 소비에 하기 이전에 제대로 된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행을 단순히 즐기는 차원의 시간과 물질을 소비하는 개념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


경험 소비에 대한 가치관이가 올바르게 확립되지 않을 경우 따라오는 부작용들은 리스크가 더 크다. 예를 들어 YOLO라는 말이 가장 대표적이다. 물론 '인생은 한 번뿐이다’를 뜻하는 You Only Live Once는 현재의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며 소비하는 태도를 뜻하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자칫하면 미래에 대한 아무런 생각 없이 현재에 인생을 전부 걸어버리는 '충동적인 소비' 또는 '위험한 도박'으로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성세대들은 밀레니얼 세대들을 계획성 없는 세대라고 오해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반대로 밀레니얼 세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그들에게 미래에 대한 계획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을 꺼려할 뿐이고, 각자 다른 방식으로 자신들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 YOLO와 같은 말이 말이 남용되지 않고, 오해받지 않기 위해서는 현재에 자신들의 위치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충분히, 마음껏 경험하되, 그것들을 자신의 미래와 함께 연결 짓고, 융합하는 것.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새로운 꿈을 꾸는 것. 그것이 밀레니얼 세대가 가져야 할 마인드이다. 그렇기 때문에 청년 세대에게 경험 소비에 대한 가치관 적립은 더더욱 중요하다.


지금 당장 여행을 가려고 하는가? 그렇다면 왜 본인이 여행을 떠나려고 하는지 그것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는 것 필요하다. 일과 사람에 치여 휴식을 위해 떠나는 여행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그런 여행도 필요하다. 하지만 평생 한여름 밤의 꿈같은 여행만 지속하면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만약 지금 “여행 가는 것조차 복잡하게 고민해야 해?"하며 의미와 가치를 찾아야 한다는 메세지에 반감이 든다면, 어쩌면 이미 당신은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삶이라는 틀 안에 매몰되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낯선 나라에 오랫동안 머무는동안 우리는 낯선 나라를 경험하는데 그치지 않고 우리 자신에 관해 많은 것을 알아 나간다.
-로제 페이르피트-





매거진의 이전글 왜 인문학을 해야 하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