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활동을 통해 얻은 인사이트
어렸을 때 가족여행을 가면 바다에서 수영하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스키장을 가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유난히 운동 실력이 없고 겁쟁이였던 나는 모래사장에서 혼자 놀거나 자전거를 쫓아 뛰어다니거나 스키를 벗고 슬로프를 걸어 내려오곤 했다. 엄마, 아빠, 남동생, 어린 여동생까지 수영도 잘하고 자전거도 잘 타고 심지어 스키도 금방 배웠는데 나만 유독 못했다. 그게 스트레스는 아니었지만 부럽기는 해서 여름이면 바다에 겨울이면 스키장에 줄곧 따라다니고 자전거도 계속 배웠다. 무려 십 년 동안이나.
한 번은 친한 친구가 자전거를 자기가 한번 가르쳐 주겠다며 장장 한 달 동안 가르치다가 포기를 선언했다. 너무 과장한 거 아닌가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사실이다. 한 달 동안 매일 30분씩 연습했는데 결국 공원 한 바퀴도 돌지 못했다. 스키장도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거의 매년 겨울마다 갔지만 20살 때까지 한 번도 슬로프의 스키를 타고 내려온 적이 없다. 물론 스키는 강습을 안 받아서 더 오래 걸렸던 것 같긴 하다. 다른 두 동생은 잘 타서 받을 필요도 없었고 나 혼자 강습받는 게 괜히 부끄러워서 끝까지 강습받지 않았다.
이 밖에도 정말 많다. 중학교 때 체육 시간에 앞 구르기 뒤구르기 실기 시험을 보는데 당시 성적 욕심이 있어서 정말 2주간 매일 밤 연습을 했는데도 뒤구르기가 안되더니 결국은 시험 보는 날 무리해서 등을 삐끗해서 노력이 가상하다며 다행히 중간 성적은 받았지만, 그 뒤로 한 달 동안 뜀박질도 못 했다. 고등학교 땐, 탁구 실시 시험 준비를 위해 한 달 동안 점심 먹고 친구들과 매일 연습했는데 결국 C를 받았다.
나는 왜 이럴 때 진지하게 고민해 봤는데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인 것 같아 문제점을 찾기도 힘들었다. 사실 당시는 크게 생각 안 하고 ‘에이 또 그러네, 어쩔 수 없지, 최선은 다했으니까’ 하고 말았던 것 같다. 어쨌든 못했지만 뭐든 꾸준히 했다. 잘하고 싶어서 꾸준히 한 게 아니라 한 번만 성공하자는 마음으로 했던 것 같다. 누가 강요하거나 시키지도 않아서 포기할 법도 한데 못한다는 것에 크게 스트레스가 없어서 그냥 시도했다. 다만 스트레스받지 않는 선에서 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자전거로 10m 이동하기, 스키 슬로프 초급 두 번 타기, 물에서 구명조끼 입고 놓기 등
애초에 큰 기대감이 없어서 그렇지 못해도 ‘다음에 다시 하지 뭐’ 이랬던 것 같다.
이 꾸준함이 정확히 10년 정도 쌓였을 때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학교 신입생 OT로 스키장을 가게 됐는데 다 같이 스키를 배우고 타는 시간이 있었다. 친해진 친구가 스키를 한 번도 타본 적이 없다고 걱정하길래 나도 못 탄다며 여차하면 같이 스키를 벗고 내려오자, 다짐했다. 강습 시간이 있어서 처음으로 강사님께 약 10분간 강습을 받고 초·중급 코스에 올라갔는데 처음으로 스키를 타고 내려왔다. 아주 자연스럽게 마치 원래 잘 탔던 사람처럼!
옆에 친구가 내려와서 왜 못 탄다고 거짓말했냐며 책망했지만,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나도 놀래서. 그 뒤로 15년 때 매년 스키장 중 상급 코스에서 거의 넘어지지 않고 스키를 탄다.
자전거도 21살 때 친구들과 제주도 배낭여행을 가서 친구가 한번 잡고 밀어준 이후 쭉 타고 있다. 이후 영국에서 자전거로 통학했을 정도로 잘 타게 됐다.
그리고 우리 세 남매 중 나만 아직 여름에 바다에 가서 서핑을 즐기고 겨울엔 스키장을 간다.
처음부터 잘하는 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꾸준히 해서 유지해야 잘한다고 말할 수 있다. 만약에 내가 어렸을 때 몇 번 해보고 포기했다면 지금 수영도 못하고 자전거도 못 타고 스키장도 안 갔을 것이다. 잘하여야겠다는 욕심이 없어서 기대감이 없어 더 오랫동안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만약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면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진작 포기했을 것이다.
그래서 난 처음부터 잘하고 일찍이 성공하는 사람들의 삶이 좀 궁금하다. 마지막까지 성공한 삶으로 살 수 있을까?
대학교를 졸업하고 유학을 준비하던 중 UI/UX 외부 강의를 일주일 동안 들으러 다닌 적이 있다. 유학 포트폴리오 준비도 끝나고 시간이 남아서 들었었는데 졸업하고 얼마 되지 않아 여기저기 취직하는 친구들을 보고 유학을 가도 되나? 잠깐 진지하게 고민하던 시기였다. 강의를 들으면서 일하는 게 재미있어 더 고민했던 것 같다. 당시 졸업한 지 얼마 안 되어 그런지 여기저기 면접 볼 생각이 없냐며 물어보는 곳도 많았다. 유학을 다녀와서도 나를 찾는 회사가 있을까? 고민이 많이 됐다.
일주일 강의가 끝나고 뒤풀이 시간에 강사님이 이것저것 궁금한 것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보라고 하셔서 고민을 털어놓았는데 대답이 의외였다.
“제가 10년 전에 학교를 졸업하고 제 주변 동기들은 대부분 대기업에 취직했습니다. 당시 어마어마한 연봉을 받고요. 저는 제가 하고 싶던 일이 있어서 취업을 포기하고 다른 일을 준비 중이었는데 잘 안 돼서 3년을 방황했습니다. 그리고 포기할까 싶었던 3년쯤 뒤에 점점 풀리기 시작해서 여기저기 강의도 다니고 자리 잡게 되었죠. 하다 보니 뭘 하고 있더라고요. 최근에 대학 동기들을 만났는데 당시 대기업 다니던 친구 대부분이 그 뒤 3-4년 뒤에 회사를 그만두고 더 작은 회사에 들어가 지금은 제가 젤 많이 법니다. 그걸 보면 시기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단 확실히 하고 후회하는 게 더 낫습니다. 다만, 유학 다녀온다고 해서 내 인생이 크게 바뀔 거란 기대를 하면 안 돼요. 진짜 배우고 싶은 걸 배우러 간다고 생각하세요. 아직 젊잖아요.”
저 말은 십 년도 넘은 지금까지 기억에 또렷이 남는다. 저 말을 곱씹으며 유학 생활을 버텼다. 어떻게 보면 공부를 오래 해서 남들보다 늦어지고 있지만 영국에서 배웠던 경험이 현재까지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래서 대학교 졸업하고 바로 취직인 안 돼서 안절부절못하는 친구들을 보면 너무 안타깝다. 지금도 늦은 게 아닌데…
회사에서도 오히려 바로 들어온 신입사원들이 못 버티고 뒤늦게 대학원에 가거나 쉬고 있는 친구들도 여럿 있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자기 삶의 속도는 스스로 조절할 때 잘 흘러가는 것 같다. 남들이 가는 속도에 맞추다 보면 놓치고 가거나 무리해서 가는 경우가 많은데 내 속도대로 조정하면 빨리 달리고 싶을 땐 속도를 냈다가 아니다 싶으면 속도를 좀 늦추고, 안타까운 건 이런 속도 조절이 나이 들어서 터득이 된다는 거다. 그래도 다행인 건 요즘은 속도 조절하는 방법을 여기저기서 많이 알려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