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소년기, 글쓴이는 수많은 학원을 전전했다. 피아노 학원, 바이올린 학원, 속셈 학원, 국영수 학원, 웅변 학원, 바둑 학원, 컴퓨터 학원 등등등.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미술 학원을 다녀 볼 시간은 없었다. 상대적으로 미래의 생산인구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큰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해서였을까? 호기심은 많았지만 투자할 시간과 자원이 마땅하지 않았다. 물론 부모님을 설득할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시간이 있을 때마다 좋아하던 만화를 따라서 그리곤 했었다. 그림을 잘 그리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림을 못 그리는 편도 아니었다. 어정쩡한 실력의 그림을 그리고 또 그리며 자기만족이라는 것을 배웠다. 하지만 그림에 시간을 투자할 때마다 공부할 시간은 그만큼 줄어들었기 때문에 학교 성적은 곤두박질쳤다. 결국 그림 그리기를 포기해야만 했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나 자신도, 그림보다는 공부가 우선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결별 선언을 했던 그림 그리기를 20~30년이 지난 최근에서야 다시 시작하게 됐다. 비록 나만의 창작품을 그리기에는 많은 부족함이 있지만, 찍어 놓았던 사진이나 남의 그림 등을 베껴 그리며 그동안 억눌러왔던 그리기의 희열을 다시금 느끼게 됐다.
그림을 그리면 사물을 자세히 관찰하게 된다. 사물의 음영을 통해 입체감을 표현할 수 있고, 평소 무심코 지나쳤던 사물의 생김새나 구조 등이 더욱 자세하게 눈에 들어온다. 평소에 못 봤던 세세한 부분까지 보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일깨울 수 있게끔 만들어 주는 것이 그림 그리기의 묘미인 듯싶다. 또한 정신이 오롯이 맑아진다. 온갖 잡생각이 사라지고 오로지 나의 창작품과 나만이 머무를 수 있는 기묘한 정신세계가 형성된다. 정신 수련의 방이랄까? 나의 집중력이 나도 모르게 형성되는 그 순간, 나는 정서적 자유를 만끽한다.
제대로 배운 적 없는 그림이지만, 열심히 그리다 보면 언젠가는 내 머릿속 상상의 나래를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날도 오지 않을까 자문하며 글을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