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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정우 Mar 23. 2021

1937년 제트 엔진의 등장

한계에 다다른 왕복 엔진

매거진 발행을 위해 기존에 작성한 글들을 검토해 새로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휴대폰으로 읽기 불편하실 수 있으니 되도록 PC로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매일경제

1903년 12월 17일, 첫 비행에 성공한 라이트 형제의 플라이어 1호는 이카로스처럼 하늘을 날고팠던 인간의 욕망을 처음으로 충족 시켜주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항공기는 제1차 세계대전을 지나면서 빠르게 발전했고 사람들은 더 빠르고 높이 날 수 있는 항공기를 원하기 시작했다. 이에 나무와 캔버스로 만들어진 복엽기는 어느덧 금속제 단엽기로 발전했다. 그러나 1930년대에 일어난 스페인 내전과 1939년 전 세계를 혼돈 속으로 밀어 넣은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왕복 엔진 항공기는 급격하게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1940년대에 들어서자 점점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한편 1940년대의 공중전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오늘날 ‘공중전’하면 레이더로 적기를 겨냥하고 미사일을 발사하는 BVR(Beyond Visual Range)이 제일 먼저 떠오르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미사일과 레이더 대신 조종사의 두 눈으로 적기의 꼬리를 물고 기총을 난사하는 도그파이팅(Dogfighting)만 존재할 뿐이었다. 그래서 속도가 빠른 비행기는 적의 꼬리를 물기도, 적으로부터 벗어나기도 쉬워 공중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조종사들의 요구에 맞춰 엔지니어들은 항공기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자동차 엔진과 동일한 원리로 작동하는 레시프로(reciprocating) 엔진의 성능은 이미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결국 엔진을 하나가 아닌 두 개를 장착해 속도를 높이려고 했지만 미국의 P-38과 영국의 Mosquito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항공기는 무게가 증가함에 따라 중량이 늘어나면서 둔중해질 뿐이었다. 당연하지만 엔진이 두 개가 된다고 해서 속도가 두 배 빨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좌우에 위치한 거대한 엔진은 조종사의 시야를 가렸으며 대형화된 기체는 피탄 면적이 넓어지며 적에게 발각되기 쉬워지는 등 장점보단 단점이 더 많아지는게 다반사였다.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에서 명성을 날린 유명한 전투기들은 대부분이 쌍발이 아닌 spitfire나 P-51처럼 주로 단발 전투기들이었다.

de Havilland Mosquito @Pinterest
Lockheed P-38 lightning  @ThoughtCo

결국, 왕복 엔진보다 더 빠른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왕복 엔진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를 사용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이론적으로 왕복 엔진의 프로펠러는 800 km/h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프로펠러는 보통 항공기 바로 앞에 위치해 있으면서 가장 빠르게 움직이는 부분이다. 그리고 여기서 항공기의 속도를 높이고자 프로펠러의 회전 속도를 높이게 되면 프로펠러의 끝부분인 깃이 항공기보다 먼저 음속에 다다르게 된다. 문제는 이렇게 프로펠러의 깃은 소리의 벽(sound barrier)에 부딪히면 공기 저항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효율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만다. 게다가 항공기 제일 앞에 위치하며 회전면을 만드는 프로펠러는 공기역학적으로 고속 비행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자동차 엔진과 동일한 왕복엔진(reciprocating engine)은 공기가 희박한 고고도에서는 효율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항공기가 더 멀리 그리고 더 빨리 날기 위해서는 공기의 저항을 최소화해야 했고 이를 위해선 공기가 희박한 고고도에서 비행하는 것이 유리한데, 왕복 엔진은 고고도에서 효율이 떨어졌고 심한 경우에는 엔진이 갑자기 멈추는 일도 있었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원인은 왕복 엔진의 작동 원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왕복 엔진은 외부로부터 공기를 흡입한 뒤 실린더 내부에서 연료를 주입하고 폭발시켜 피스톤을 움직이는 방식으로 프로펠러를 회전시킨다. 그런데 고고도에서는 실런더 내부로 들어오는 공기의 밀도가 낮아 엔진의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1930년대 말 제트 엔진이 엔지니어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는데, 실은 제트 엔진이라는 개념 자체는 그 전부터 존재했었다. 왕복 엔진이 한계에 직면하기 한참 전인 1921년, 프랑스의 막심 기욤(Maxime Guillaume)은 당시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축류식 터보 제트 엔진의 초석이 되는 이론을 제시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를  실현시킬 기술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의 이론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에게서 잊혀져갔다. 하지만 5년 뒤, 영국에서 그리피스(A.A. Griffith)가 ’An Aerodynamics Theory of Turbine Design’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며 축류식 압축기를 제작할 수 있는 공학적 토대를 만들어 주었고 그 사이 야금학을 비롯한 여러 공학 기술들의 발달로 드디어 1930년대 말에 영국에서 프랭크 휘틀(Frank Whittle)이, 독일에서는 한스 본 오하인(Hans von Ohain)이 제트 엔진을 개발하는데 성공한다.

Frank Whittle (L) and Hans von Ohain (R) @Getty image

이들은 서로에 대해 전혀 모른 채 제트 엔진이라는 새로운 개넘의 항공기 동력원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제트 엔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완벽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왕복 엔진에 비해 여러모로 문제가 많았다. 더군다나 기존의 왕복 엔진으로도 쓸만한 전투기를 충분히 만들 수 있었기에 초기 제트 엔진은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나마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던 독일만이 제트 엔진이라는 새로운 동력원에 약간의 관심을 주어 연구 개발을 이어나갔다.




참고자료 및 출처

* Cover image by Getty image

1. 네이버 두산백과, 라이트 형제

2. 쿵디담, 엔진의 발전이 전투기에 끼친 영향 (3) 왜 쌍발 엔진인가?

3. 이 밖에 부수적인 내용은 '1937년, 제트 엔진의 등장'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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