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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정우 Sep 16. 2022

#4 1950년대 대만

제2차 대만 해협 위기

1957년, 스푸트니크 발사로 강화된 소련의 위상을 보며 “동풍이 서풍을 지배하고 있으며 지금이 제국주의의 썩은 전진기지를 공격할 시기’라는 판단 하에 중국은 대만에 대한 공세적인 정책을 재개한다. 또, 1958년 대약진 운동의 실패로 중국 본토에서는 수천만 명이 대기근으로 굶어 죽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마오쩌둥은 위기 상황을 조장하여 내부 불만을 외부로 돌리고자 했다. 결국, 1957년에 대약진 운동과 함께 미국과의 회담은 결렬되었고 1958년 3월 미 국무부가 중국 공산당 정권을 비합법적이라고 비난하자 중국도 중동 지역의 미국 개입은 제국주의라고 반박하였다. 이는 1958년 7월 이라크에서 군부 쿠데타에 의해 공산 혁명이 일어나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국이 선포되는 등 영국과 서방 세계의 중동에 대한 영향력이 흔들리고 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즉, 미국의 관심이 동북아시아에서 다시 중동으로 향하기 시작하고 소련의 인공위성 발사로 미국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 중국은 적극적인 군사 행동을 개시하게 된다. 그렇게 마오쩌둥은 1958년 8월 17일에 열린 중앙 정치국 회의에서 진먼다오와 마쭈다오에 대한 포격을 지시한다.


한편, 이번에는 지상뿐만 아니라 공중에서도 중공군과 대만군 사이에 전투가 치러졌다. 그리고 이곳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공대공 미사일이 실전에 등장한다. 공대공 미사일이라는 개념은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 고안되었는데 그때에만 해도 개발자들은 미사일이 어떻게 유도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전후 제트 전투기가 등장하면서 제트 엔진 특유의 높은 배기열을 따라가는 열추적 적외선 유도 장비를 사용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히면서 1951년 AIM-9 Sidewinder의 시초가 되는 GAR-8이 개발된다. (GAR-8은 1960년대 전군 명명법 개정안에 따라 AIM-9 Sidewinder로 바뀐다. 따라서 여기서는 GAR-8 대신 AIM-9이라고 부르도록 하겠다.) GAR-8은 1953년에 처음으로 표적기 격추에 성공하였고 1955년에 미 공군이 운용하던 GAR-2보다 우수한 성능을 보여주어 정식으로 채택되었다. 그리고 1957년에 스푸트니크 사건으로 미국은 소련에 대한 기술적 우위를 확고히 하고자 우방국들에 AIM-9 Sidewinder를 널리 수출했다. 그리고 그중에는 대만도 있었다.


당시 중국은 대만보다 열악한 공군력을 가졌으나 한국전쟁 이후 소련의 지원으로 수적으로나 질적으로 뛰어난 전투기를 다량 보유하게 되었다. 특히 한국전쟁에서 크게 활약한 MiG-15와 MiG-17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때 MiG-17은 소련이 한국전쟁 중 추락한 F-86을 참고하여 개량된 기체였으므로 F-86과 대등한, 어떤 면에서는 더 우수한 성능을 보여주었다. 반면 대만은 F-86를 보유하였는데 수적으로나 질적으로 중공군에 비해 우위를 가진다고 보기 어려웠다. 게다가 F-86F보다 높은 고도에서 비행이 가능했던 MiG-17은 고공비행을 하다가 대만 공군을 발견하면 급강하하여 공격하고 이탈하는 전술을 사용해왔기에 대만 공군은 중국 공군에 맞대응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1958년 9월 24일, 인해전술과 고공비행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던 중국 공군 MiG-15 편대는 대만 공군 F-86F가 발사한 AIM-9 미사일에 편대가 흐트러지면서 혼란에 빠지고 만다. 중국 공군 입장에서는 기총에 의한 공중전을 상정하고 있었기에 사정거리 밖에서 발사되는 미사일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대열이 흐트러진 미그기들은 기동을 하면서 속도가 느려졌고 손쉬운 먹잇감이 되어 대만 공군에 의해 쉽게 격추되었다. 그렇게 총 적게는 4기 많게는 10기가 공대공 미사일에 격추되면서 이를 본 미국은 미사일 만능주의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초창기 적외선 유도 미사일은 사용지침이 따로 존재할 정도로 사용이 제한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태양이나 사막과 같은 자연적인 열원이 적외선 탐지기에 혼란을 줄 수 있었으므로 태양을 등진 채 열원이 가장 뚜렷하게 보이는 적기 후방을 향해서만 발사해야만 했고 사거리도 넉넉하지 않아 적기가 일정 거리 안에 들어와야만 공격이 가능했다. 당연히 기동을 하는 중에 발사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심지어 초창기 열추적 미사일은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만 공군은 AIM-9 미사일을 사용하는데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실전에 막 투입된 미사일의 전과는 미군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고, 이러한 사정을 알 리 없었던 중공군은 정체불명의 무기에 속절없이 격추되는 모습을 보며 충격과 공포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미사일 만능주의를 바탕으로 개발된 전투기가 바로 F-4 Phantom II이다. 지금이야 다양한 개량을 통해 기총도 탑재하면서 흠 없는 전설적인 전투기로 유명하지만 초기에만 해도 팬텀은 기총 탑재를 고려하지 않았으며 이 때문에 베트남전에서 눈앞에 미그기를 두고도 격추하지 못하는 전투기였다.


그런데 이때 중국이 MiG-17에 박힌 채 불발된 온전한 AIM-9B 한 발과 대만이 발사한 사이드와인더 미사일 잔해들을 수거하면서 미국의 최신예 미사일이 적성국에 넘어가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그런데 중국은 미국의 최신예 미사일을 확보하고도 이를 분해하여 분석할 능력이 없었다. 결국, 중국은 소련에게 역설계에 성공하면 중국에게 미사일을 판매하라는 조건으로 사이드와인더 미사일을 소련에 넘기고 그 결과 소련은 AA-2 아톨 미사일을 개발해냈다. 실제로 아톨 미사일은 사이드와인더를 복제한 미사일이니만큼 사이드와인더의 부품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미사일은 미국이 우방국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소련의 위성국가들에 보급되어 베트남 전쟁에서는 미군을 상당히 골치 아프게 만들었다. (소련이 사이드와인더를 복제하여 AA-2 Atoll 미사일을 개발한 경위에 대해서는 스웨덴 공작설도 존재한다. 이에 대해 나는 소련이 두 가지 루트 모두를 통해 관련 기술을 확보했을 것이라 본다. 꼭 한 가지 루트를 통해서만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 말이다.)


한편, 손쉽게 대만 수복이 끝날 것이라 생각했던 중공군의 예상과 달리 전세가 쉽사리 풀리지 않자 중국은 10월 6일, ‘타이완 동포에 고함’을 발표하며 대만에 화해의 제스처를 건넸다. 그 사이 미국은 대만을 설득하여 10월 23일, 미국이 진먼다오와 마쭈다오의 방위를 보장하는 대신 장제스는 대륙에 대한 무력 사용을 포기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게 된다. 한마디로 진먼다오와 마쭈다오를 포기하지 않는 대신 장제스가 그동안 고수해왔던 대륙 수복을 포기하는 셈이었다.


AIM-9 사이드와인더 미사일에 가려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1958년 10월에 미국은 대만으로 F-100F 10대를 급파했다. MiG-17의 등장으로 대만 공군이 보유한 F-86F로는 적절한 대응이 어려울 것이라는 미국의 판단 하에 보내진 것이었다. 이윽고 1959년부터는 F-100F를 통해 대만 조종사들의 교육이 시작되었고 뒤이어 15대의 F-100A와 4대의 F-100F가 대만에 도착한다. (참고로, 대만은 미 공군을 제외하고 F-100A를 운용한 유일한 나라이다. 다른 나라도 F-100을 운용했으나 A형을 운용한 나라는 대만이 유일하다.) 결과적으로 대만 공군은 대략 120대의 F-100A와 15대의 F-100F를 운용하게 된다. 그리고 1950년대 말 대만 공군에 인도된 A형은 훗날 AIM-9 사이드와인더 공대공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D형으로 개량된다. 대만 공군에 인도된 첫 초음속 전투기였음에도 뒤이어 등장하는 마하 2급 초음속 전투기 F-104 Starfighter의 등장으로 큰 주목을 받진 못하였다. 개인적인 추측이나 F-84가 F-86에 밀려 공중전보다 지상 공격용으로 운용되었듯이 F-100도 F-104의 등장으로 공대공 임무보다는 공대지 임무를 주로 맡게 되면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채 F-5가 배치됨에 따라 1979년부터 일선에서 물러나게 된다.


<Background Image>

Jacobin, The Pentagon Seriously Contemplated Nuking China in 1958


<참고자료>

Wikipedia, First Taiwan Strait Crisis

Wikipedia, Second Taiwan Strait Crisis

Office of the Historian. The Taiwan Straits Crises: 1954-55 and 1958

Warthunder, North American F-100F Super Sabre (ROCAF) by Miki Hoshii (2019)

Harder Than Climbing to Heaven: Fighter Aviation in the Republic of. China Air Force by the Faculty of the History Department California Polytechnic State University, San Luis Obispo.

Kmozzart, AIM-9 사이드와인더(Sidewinder) 이야기

네이버 xwing, F-86 세이버 -마지막-

네이버 욱이, [국공내전史] 장제스 타이완으로 향하다 – 14. 한국전쟁, 미 7함대 타이완으로 출동하다

네이버 sundin13, 공대공 미사일 전성시대를 연, 우연한 보물... [1958년 ‘진먼’공방전]

딴지일보, 국방브리핑 42: 적외선 유도기의 탄생과 불법 복제의 시대 1,2

유용원의 군사세계, 무기의 세계 - 공대공 미사일

리브레위키, F-86 세이버

f-100.org Online Photo Libr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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