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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Jun 15. 2024

주변머리

   사이좋은 오누이처럼 다정해 보이는 중년 부부는 늘 함께 깎새 점방을 찾았었다. 그러다가 요새는 남편만 혼자 온다. 같이 들를 적에는 남편 커트 두피마사지를, 아내는 두피마사지를 세트 메뉴처럼 시키곤 했다. 츤데레 기질이 살짝 엿보이긴 해도 아내와 대화를 조곤조곤 나눌 줄 아는 살가운 남편과 그런 남편에게 깍듯하게 경어를 써가며 응대하는 아내는 어제오늘 급조한 티와는 전혀 거리가 먼 자연스러움 그 자체였다. 다정한 일상성을 확보한 부부의 모습이 하도 신선하고 희귀해 여운이 오래오래 남나 보다.

   두피마사지 기계가 고장난 적이 있었다. 기계 결함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머리숱 많은 손님들을 상대해서 생기는 과부하라는 진단이 돌아왔다. 뜻하지 않게 적잖은 비용을 지불해 수리를 하고 났더니 보골이 났다. 본전 생각도 간절했고. 하여 그간 똑같은 값을 받고 해주던 여자 두피마사지 요금만 3천 원에서 5천 원으로 올렸다. 공교롭게도 사이좋은 오누이처럼 다정해 보이는 중년 부부 중 아내 손님이 요금 인상의 첫 타깃이었다.

   껄적지근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다. 알량한 2천 원 더 벌겠다고 소탐대실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서긴 했지만 요금 인상이라는 방울을 고양이 목에, 아니 여자 손님 목에 다는 걸 더 지체할 수도 없었다. 미리 공지하지 않아서 이번까지만 예전 요금을 받겠지만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깎새가 일방적으로 선언하자 점방 공기는 일순 어색해졌다. 기계가 잘못된 게 내 책임은 아니잖냐고 항변하는 듯한 시선으로 깎새를 노려보면서도 일체 입을 봉해 버린 아내 손님 안색은 그로테스크하게 일그러졌다.

   요금 인상 방울을 달고 난 다음 달이 남편과 함께 깎새 점방을 찾은 마지막이었다. 깎새가 으레 "사모님도 두피마사지 하실 거죠?" 의향을 물었더니, "미장원에서 퍼머하면서 두피마사지까지 받고 오는 길입니다. 오늘은 됐어요" 돌아오는 목소리가 냉랭했다. 그게 아내 손님과 마지막 대화였고.

   남편 손님이 혼자서 깎새 점방을 찾고부터 말수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전혀 나긋나긋하지 않은 깎새가 그렇다고 분위기를 쇄신할 리 만무하다. 하여 침묵에 지배당한 점방 안은 괴괴하다 못해 괴이했다. 점입가경인 건 남편 손님까지 두피마사지를 거르는 일이 다반사다. 하다가 안 하는 건 무슨 심보냐고 따질 수는 없다. 하고 안 하고는 손님 자유이긴 하지만 캐묻는 자체가 깎새로서는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내는 자해이기 때문이겠다.

   곱씹을수록 아쉬운 점은, 아내 손님과 결정적으로 외틀어져 거리감이 느껴지던 찰나 그 틈이 더 벌어지기 전에 봉합할 노력이나마 기울였어야 했다. 극적으로 관계가 정상화되지 않는다 해도 말이다. 서운해하는 손님을 다독이고자, 그게 설령 빈말일지언정, 립서비스 곱게 날릴 줄 아는 주변머리였다면 손님 끊길까 노심초사하진 않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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