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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Jun 14. 2024

세차

   세차를 거의 안 한다. 타고 다니는 순백색 경차는 멀리서 보면 멀끔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가관이다. 꾸질꾸질하다는 걸 진작에 인지하면서도 선뜻 세차장으로 향하지는 않는다. 귀차니즘의 전형적 행상머리지만 세차 가성비에 대해 늘 의문이 드는 회의적인 성향 탓이 크겠다. 비 오면 말끔하게 씻겨 나갈 걸 왜 굳이 비싼 돈 들여 세차를 해야 하나, 대외적인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닌 기껏해야 출퇴근용으로 사용할 뿐인데 남한테 잘 보일 까닭이 무에 있느냐는 게 깎새가 세차를 게을리하는 꼴같잖은 명분이다. 허나 차에 관한 한 유난스레 깔끔을 떠는 마누라는 그런 깎새를 볼 적마다 울화통이 치민다. 세차는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미관의 문제라고 쏘아붙이면서. 보다 보다 못해 게으름뱅이 귀때기가 떨어지도록 붙잡고 세차장으로 끌고 가야 직성이 풀리는 마누라로서는 장농 면허인 게 그저 한스러울 따름이다. 

   깎새가 세차를 굳이 하지 않으려는 까닭 중에는 세차를 해서 기대되는 삽상한 그 무엇이 별로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도 큰 지분을 차지한다. 목욕, 하다못해 등목만 해도 사람은 일단 상쾌하다. 그 상쾌한 기분을 이어서 한여름 무더위를 일거에 날려줄 맥주와 화채를 기대할 수 있고 그것들을 함께 즐길 벗과의 재회 또한 기대할 만하다. 하지만 세차를 해서 기분이 좋다고 맥주를 들이켰다간 음주 운전으로 걸려 패가망신하기 십상이고 가까운 데 사는 벗한테 세차했다고 우쭐댔다간 혹시 더위 먹었냐며 정신 건강을 심각하게 걱정해 줄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 세차로 반전을 꾀하는 것은 무리다. 

   윤효라는 시인이 쓴 「세차」라는 시가 있다.


비를 맞으며 세차를 하였습니다

​오가는 이마다 한마디씩 하였습니다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이등병 아들이 귀대하는 날이었습니다 


   이벤트가 이 정도는 되어야 세차를 하는 법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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