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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Jun 13. 2024

혼술의 의미

   휴무일인 화요일을 모친 병원 일로 보내는 경우가 잦다. 그제도 아침 7시경 요양병원에 가 모친을 픽업해 예약된 8시 채혈, 10시40분 진료를 위해 주치의가 있는 해운대 소재 종합병원으로 바쁘게 달려갔다. 요행히 친절하기 그지없는 진료 창구 간호사가 굽어살피사 예약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주치의를 만나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번잡하기 짝이 없는 원외 약국에서 두 달치나 되는 약을 조제해 끼니 때마다 뜯기 편하게 일일이 포장할 때까지 기다리느라 아낀 그 한 시간을 하릴없이 결국 날리고 말았다.

   그날따라 채혈 전 8시간 금식한 채로 오전 내내 병원 여기저기를 쏘다니는 일은 코에 호스까지 꽂은 모친한테는 되우 버거웠을 테고 그런 모친을 앉힌 휠체어를 끌고 다니는 깎새도 못할 짓이긴 마찬가지였다. 편찮은 모친을 모시고 병원 다닌 지가 10년이 넘어서 이젠 이골이 났을 법도 하지만 병원 갈 일만 잡히면 누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바로 주먹을 날려 버릴 듯이 긴장하고 예민한 상태가 온종일 이어지곤 한다. 서두른다고 서둘렀지만 요양병원으로 복귀한 건 거의 정오가 다 되어서였다. 배 고프고 피곤하다는 모친을 병실로 올려 보내고 나서야 물 빠진 스펀지마냥 기력이 풀려 버린 깎새는 집까지 어떻게 돌아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새벽같이 일어나 채비를 갖추느라 아침 끼니를 건너뛰었다. 저녁 헬스장 가기 전에 아침 겸 점심 겸 저녁 삼아 칠천 원짜리 편육을 사서 먹었다. 이왕 먹는 거 구색은 갖춰야겠기에 캔맥주 네 개를 깠다. 이왕 차린 주안상이니 푸짐하게 먹어볼 욕심이 더 생겨 냉장고를 뒤져 나온 명란젓 네 덩어리까지 구웠다. 명란젓을 구워서 안주로 먹는 게 요즘 쏠쏠한 재미다. 그게 그날 식사로 전부였다. 실은 몇 달 전부터 휴일이면 그런 식으로 먹는다. 아니 휴일을 보내는 패턴으로 굳어져 버렸다. 모친 모시고 병원 다니거나 병원 진료가 없으면 면회라도 가서 모친 얼굴 보는 게 쉬는 화요일 가장 중요한 일과가 됐다. 그 나머지 시간, 즉 모친과 관련된 일을 모두 마무리하고 저녁 헬스장 가기 전까지 길게는 서너 시간, 적게는 한두 시간 나는 틈에 명란젓 구워 맥주를 홀짝대는 게 유일한 낙인 것이다. 쉬는 화요일마다 취중인 채로 헬스장을 향하는 까닭이겠다.

   쉬는 화요일 아깝게시리 혼술로 탕진하느냐고 꾸짖지 말았으면 한다. 그 짧은 틈에 기대어 마시는 술(소주와 막걸리는 안 마신다. 그나마 맥주가 헬스장에서 냄새가 덜 나는 편이라)이 경직되어 있던 심신을 잠깐이라도 무장해제시켜 주니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가. 그때만큼은 무념, 무상인 채로 모든 구속에서 잠시나마 벗어난 해방감을 누릴 수 있으니 합리성과 이성의 잣대를 들이댈 계제가 아니다. 그렇게라도 한숨 돌려야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풍수지탄'이 곧 닥칠 미래인 양 뒤숭숭한 파문을 일으킬지언정 파멸적이진 않을 테니 말이다. 

   깎새한테 혼술의 의미는 그렇게 변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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