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대일 Jul 07. 2024

시 읽는 일요일(159)

레테 

   보들레르 



내 가슴 위로 올라오라, 잔인하고 귀먹은 넋아, 

열애의 암호랑이, 무심한 얼굴의 괴물아, 

네 무거운 갈기의 두터움 속에 

이 떨리는 손가락을 오래오래 잠그고, 


너의 체취 가득한 그 치마에 

이 괴로운 얼굴을 파묻고, 

내 죽어버린 사랑의 아늑한 군내를 

시든 꽃냄새를 마시듯 마시고 싶구나. 


잠들고 싶구나! 사느니 차라리 잠들고 싶구나! 

죽음처럼 아늑한 잠에 빠져, 

청동처럼 매끈한 네 아름다운 육체 위에 

내 입맞춤을 회한도 없이 진열하리라. 


나의 흐느낌을 가라앉혀 삼키기 위해서는 

네 잠자리의 구렁텅이보다 더 나은 것이 없으니, 

거센 망각이 네 입술에 깃들고, 

레테 강은 네 입맞춤을 타고 흐른다. 


나의 이 신세를, 이게 내 열락인가, 

타고난 운명인 듯 따를 것이니, 

온순한 순교자, 무고한 수형자, 

나의 이 열기가 형벌에 불을 질러도, 


이 원한을 강물에 빠뜨려 죽이기 위해, 

네 뾰족한 젖가슴의 매혹적인 꼭지에서 

네펜테스와 맛 좋은 독당근을 빨리라, 

마음 한 번 가둬 본 적 없는 그 젖가슴.


   (고故 황현산 교수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난다, 2013)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 초판이 1857년에 처음 발간되었을 때, 프랑스의 검찰은 공공풍기문란 죄로 그 저자를 기소하였다. 보들레르는 이 소송에서 패하여 당시로서는 큰돈인 3백프랑의 벌금을 내야 했고, 시집에서 여섯 편의 시를 삭제해야 했다. 말이 여섯 편이지, 시집에서 문제의 시가 실린 페이지를 잘라내게 되면 그 뒷면에 인쇄된 시도 무사할 수 없으니 훨씬 더 많은 시편들이 참화를 입었다.

   그 여섯 편의 시 가운데 「레테」라는 제목의 시가 있다. 레테는 알다시피 그 물을 한모금만 마시면 이승의 기억을 잃게 된다는 저승 입구의 강이다. 『악의 꽃』 초판 전체에서 가장 선정적인 시구가 이 시에 들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너의 체취 가득 배인 네 치마에/ 고통스런 내 머리를 묻고/ 죽은 내 사랑의 달콤한 군내를/ 시든 꽃처럼 들이마시고 싶다.” 그러나 이 시가 처벌을 받은 것은 이 시구 때문이 아니었다. 검사가 정작 문제로 삼은 것은 다음과 같은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이었다. “내 원한을 빠뜨려 죽이기 위해/ 심장 하나 담아본 적 없는/ 네 날카로운 젖가슴의 뾰쪽한 끝에서/ 효험 좋은 독즙을 빨리라.” 이 시구에 나오는 여자의 젖가슴은 여자가 옷을 벗었다는 정황을 말해준다. 검사에게 중요한 것은 시구에 담긴 내용이나 그 효과가 아니었다. 시가 여자의 나체를 보여준다는 사실이 오직 그를 분노하게 했다.

   검사가 시의 맥락을 따졌더라면 여자의 젖가슴보다는 체취 배인 여자의 치마와 거기에 제 얼굴을 묻는 남자를 더 위험하게 여겼을 것이다. 아니, 그가 맥락을 더 깊이 따졌더라면, 그는 이 시에서 음란한 한 남자를 보기보다는 제 상처 많은 기억을 잊기 위해 높은 흥분 상태에서 제 정신을 마비시키려는 고뇌에 찬 한 남자를 보았을 것이다. 맥락을 따질 마음의 여유나 능력이 없다는 것은 그 검사로서는 잘된 일이기도 했을 터이다. 그런 여유나 능력이 있었더라면 그 남자를 기소하려 하기보다 그 고뇌에 한 가닥이라도 관심을 갖게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95~96쪽)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검사란 족속은.)

작가의 이전글 속절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