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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Jul 09. 2024

아홉수는 헛소리

   소설가 이문구는 숫자 9로 이런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열은 끝이 있어도 아홉은 끝이 없는 수여. 그래서 열버덤 많은 수가 아홉인겨. 아홉은 가장, 맨, 제일 같은 무한량 무한대 무진장인 것들을 가리킬 때 써먹는, 수가 없는 수니께. 하늘에서 가장 높은 디는 구민九旻이구, 땅에서 가장 높은 디는 구인九仞이구, 땅에서 가장 짚은 디는 구천九泉이구, 넓디넓은 하늘은 구만리장천九萬里長天이구, 넓디넓은 땅덩이는 구산팔해九山八海구, 나라에서 가장 큰 관가는 구중궁궐이구, 또 가장 큰 민가는 구십구간이구, 집구석만 컸지 살림살이가 무진장 쪼들렸으면 구년지수九年之水이구, 그래서 수없이 태운 속은 구곡간장九曲肝腸이구, 그러면서 수없이 죽다 살았으면 구사일생이구, 그렇게 수없이 넴긴 고비는 구절양장九折羊腸이구, 그러다가 셈평이 펴이구 두구두구 먹구 살 만치 장만해뒀으면 구년지축九年之蓄이구… 암, 열버덤 열 배는 더 큰 수가 아홉이구말구. 참말루! (이문구,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문학동네, 2000, 119쪽)


   2011년 사비 백제의 도읍지인 부여 쌍북리 주택 신축공사장에서 숫자가 새겨진 목간 1점이 수습됐다. 그 후 2016년 한국목간학회 등 전문가들은 적외선 촬영 등을 통해 내용을 정밀 판독했다. 그 결과 목간 한 점에 적힌 숫자 기록이 구구단임을 확인했다. 9단을 가장 상단에 배치했고, 아래쪽으로 하위 단들을 기록해 아래로 갈수록 적은 숫자의 단으로 읽어 내려가는 순서다. 이를테면 9×9=81, 8×9=72 해서 9단을 쓰고, 그 아래쪽에 8단, 7단이 쓰여 있다. 각 단 사이에는 가로 선을 그어 구분했다. 또한 같은 숫자가 이어질 경우 반복부호(:)를 사용했다. 특이한 것은 9단이 끝나고 밑에 8단을 시작할 때 8×9=72부터 써야 할 것 같은데, 그건 생략하고 8×8=64부터 시작한다는 점. 이는 9×9=81 옆에 8×9=72가 있어 대각선 밑쪽으로 보면 그것이 확인 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2×2=4로 끝나는 형식이다.

   학계는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옛 백제 관청터에서 나온 점으로 미뤄 관리들이 세금용 곡식의 수량을 재는 계산도구로 활용하거나 암기용 교재로 삼았을 것이란 추정을 내놓았다. 옛 조상들이 구구단을 인식했음을 알려주는 금석문이 있다. 광개토대왕 비문에 나오는 ‘이구등조二九登祚’ 기록이다. 광개토대왕이 2×9=18살에 왕위에 올랐다는 것이다.

   왜 하필 ‘구구단’이라 했을까. 예부터 동양에서 구九는 경외로운 숫자였다. 9는 단수 가운데 가장 큰 수여서 무한의 의미를 갖는다. 또 하늘이 9겹으로 되어 있다고 해서 구중천九重天 혹은 구천이라 했다. 그 9번째 겹에 천제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9×9 부터 시작하는 ‘구구단’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이에 9가 들어가면 아홉수라고 해서 경계한다. 10, 100, 1000로 '딱 떨어지는' 숫자가 되기 직전 상태가 마지막 관문, 대격변 직전의 상태 따위를 상징해 불길한 시기로 봤던 까닭이다. 수치 자체는 종이 한 장 차이인데 그 결과는 차이가 많이 난다나? 전투력 999와 1,000이 승패를 좌우하듯 말이다. 그런 아홉수에 결혼하면 불행하고 사업을 하면 실패한다는 속설이 있지만 말짱 헛소리다. 29살 때 결혼해 우여곡절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딸 둘 낳아 아기자기 잘 살고 있고 잘 살 게 분명하며, 49살 때 커트점 열어 아직까지 밑진 적이 없는 깎새가 그 산증인이다. 

   오늘이 9일이라서 씩둑거려 봤다. 


[참고]

* <구구단 적힌 1500년 전 나무문서 발견>, 한겨레신문, 2016.01.18

* <백제의 '구구단'이 일본으로 전파됐다>, 시사저널, 2016.02.18

*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백제 구구단 목간>, 2017.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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