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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Jul 10. 2024

기다리는 고통

   2014년 봄부터 이듬해 초여름까지니까 햇수로는 2년 간, 남미에서 오랫동안 살다가 귀국한 당숙 내외가 한국 물정 익히는 셈 치고 연 조개구이 포장마차를 겁도 없이 덥썩 인수하면서 팔자에도 없는 술 장사를 하게 되었다. 일단 지르고 보는 기질을 억누르지 못해 사고를 친 꼴이었으니 아니나 다를까 인수하고 3개월 가까이는 공치는 날이 버는 날보다 잦았다. 모두 헐리고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선 그 자리가 한때는 포장마차 거리로 이름을 날렸었지만 해 떨어지면 문지방이 닳도록 주객들로 들끓어 불야성을 이루던 다른 포장마차와는 달리 밤이 새도록 유독 휑하기만 해서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고 싶을 만치 창피하고 외로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 처음으로 기다리는 게 죽도록 고통스럽다는 걸 체감했고 영혼 가출이란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절감했었다. 

   커트점을 차린 뒤로도 불도장으로 찍힌 낙인이 화끈거리듯 질겁할 때가 있다. 개점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마수걸이가 감감무소식이면 불안감이 엄습해 부쩌지를 못한 나머지 똥 마려운 놈마냥 오만상을 찌뿌리고 앉았다. 오늘만 장사할 게 아니잖냐며 자위할 법도 하지만 민락동 흑역사가 워낙 깊고 뼈아프게 각인되어서인지 하는 일도 다르고 형편까지 판이한데도 불구하고 낌새만 시원찮다 싶으면 불난 강변에 덴 소 날뛰듯 허둥지둥 굴곤 하는 것이다. 



기다림

        성백원 



매일 만나는 사이보다

가끔씩 만나는 사람이 좋다

기다린다는 것이

때로 가슴을 무너트리는 절망이지만

돌아올 사람이라면

잠깐씩 사라지는 일도 아름다우리라

너무 자주 만남으로

생겨난 상처들이

시간의 불 속에 사라질 때까지

헤어져 보는 것도

다시 탄생될 그리움을 위한 것

아직 채 벌어지지 않은

석류알처럼 풋풋한 사랑이

기다림 속에서 커가고

보고 싶을 때 못 보는

슴벅슴벅한 가슴일지라도

다시 돌아올 사랑이 있음으로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이리라


   시가 주는 핍진성이 대단하다. 시 속에 등장하는 기다림의 대상을 손님으로 치환하면 마수를 기다리는 깎새 심정, 딱 그 짝이다. 때로는 수만 마디 언사보다 한 편의 시로 너저분한 감정을 압축시킬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시가 달리 통찰력의 문학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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