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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Jul 11. 2024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갔을 때 기분

   이종환 <밤의 디스크 쇼>, 이문세 <별이 빛나는 밤에>로 대표되던 1980년대 라디오 전성시대에 곁다리라도 끼어 볼 요량으로 엽서에다 신청곡을 숱하게 적어 보낸들 채택이 될 확률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격으로 희박했다. 요즘 같지 않게 놀거리가 태부족했던 그 당시 청소년에게 라디오는 접근 용이하고 비용은 별로 안 들면서 엄청난 재미를 제공하는 공공재나 다름없었다. 그러다 보니 청취자가 당연히 몰릴 수밖에 없어서 신청곡으로 대변되는 청취자들의 관심 욕구를 모두 충족시킨다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행여 신청한 사연이나 곡이 DJ 목소리에 실려 방송을 탄다면 그야말로 가문의 영광으로 두고두고 기념할 만하지만 기적이나 다름없는 일이 자기에게 일어날 거라고는 크게 기대하지 않는 눈치였던 것도 사실이다.

   들인 공만큼 효용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진작에 눈치를 챈 깎새는 흥미거리로 유효 기간을 다해 라디오를 끊기 전까지 듣는 데만 열중하는 소극적 태도로 일관했다. 소 뒷걸음질치다 쥐가 잡히기도 한다지만 신청곡 채택 따위는 살아 생전에 자기에게 결코 일어날 요행이 아니라고 못을 박은 채로 말이다.

   그런데, 그 요행이 곧 이뤄질 판이다. 일전에 KBS클래식FM <국악의 향기>란 프로그램 청취자 게시판에다 사연과 신청곡을 올렸다고 했었다.(7/5 글) 이후로 혹시나 해서 게시판을 다시 찾았더니 그 글을 읽은 프로그램 담당자가 댓글을 달았다! 그 댓글엔 내일, 그러니까 7/12(금) 방송 중에 신청곡을 보내주겠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세상에, 내게도 이런 기적이 벌어질 줄이야!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갔을 때 느꼈을 기분을 깎새는 마음껏 만끽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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