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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Sep 30. 2024

꼬치구이 주인장

   - 싸롸있네, 이모!

   영업정지를 당해 두 달 만에 가게문을 다시 연 꼬치구이 주인장치곤 씩씩한 축에 드는 표정이었다. 까짓 두 달은 껌이라며 엔간한 풍파에는 요지부동인 여걸의 면모가 아니라면 의도하지 않은 위법행위로 치렀던 호된 단죄에 어리삥삥한 여진이 오래가거나 둘 중 하나일 테다.

   - 아침 야쿠르트 배달 아니었음 아예 접을 뻔했다니까.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든다고 단골 술집 주인장 신상을 속속들이 알 리 없다. 이 나라 최고 명문대 공대생이라는 아들 자랑만으로 밤을 꼬박 샐 기세이면서도 혼수 문제로 예비 시댁과 치열하게 신경전을 벌인 탓에 두드러기가 심하게 돋아 결혼식 연기를 심각하게 고민 중인 딸 근황, 방바닥이 반질반질해지도록 백수짓에 이력이 났으면서도 술장사 핑계로 아랫도리에 물건 달린 놈한테 분별없이 추파를 던질까 봐 실시간으로 마누라를 감시하는 것이야말로 지아비의 미덕인 양 전화기에 불이 나는 의처증 남편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것까지 가족사를 훤히 꿰뚫게 된 건 오롯이 10층짜리 건물에서 1층도 아닌 4층에 꼬치구이 점방을 차린 까닭이겠다. 아는 단골들이나 찾는 점방 안은 늘 흐리마리한 조명에 파묻혀 한산하기 짝이 없어서 농지거리가 안주를 대신하곤 했으니까. 전철역을 낀 역세권 주점이라면 의당 건물 1층에 또아리를 틀고 밤을 밝혀 주객들을 유혹하기 마련인데도 하필 4층일 건 뭐냐 굳이 알려 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다 있었을 테고 어차피 그 빌어먹을 돈의 압력에 짓눌려 내린 패착이었을 테니.

   미성년자에게 술을 팔았다고 고발을 당한 건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불찰이 큰 때문이겠지만 마수걸이 손님을 돌려보낼 배짱이 그녀에게 없었음이리라. 용의자를 탐문하는 경찰의 매서운 눈초리로 꼼꼼하게 살피지 않는 한 미성년자같지 않은 미성년자한테 가뜩이나 장사 채비로 분주한 초저녁에 "민증 까보이소"란 말이 쉽게 나올 수가 없었다. 행정 당국에서 시키는 대로 따라했다간 볼 장 다 볼 걱정에 활로를 찾아 전전긍긍하던 차에 행정구제 절차를 상세하게 조언해 줬다. 법학과로 진학했지만 학창 시절 내내 화염병과 짱돌을 교재 대신 쥐고 다니던 동기한테 전문성을 기대하기가 난망했으나 꼬치구이 주인장 딱한 사정을 털어놓자 선뜻 방도를 가르쳐 줘서 고대로 주인장한테 읊어준 것이다. 가뭄에 단비 격이라 기어이 눈물까지 흘리며 고마워했는데 아마 그때 친밀도가 정점을 찍지 않았을까 싶다.

   구제 노력은 눈물겨웠으나 꼬치구이 주인장 개인 사정은 법조문에 전혀 나와 있지 않아서인지 영업정지 2개월을 꽉 채우고 말았고, 문을 연 날에 맞춰 짠한 재회가 이뤄지던 장면에서 겨우 꺼낸 농담조 위로였다.

   장사치가 자의든 타의든 닫은 점방 문을 다시 연다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곧장 예전같은 일상을 재현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겪어본 사람은 아는 고충이다. 떨어져 나간 손님들로 매상은 급감하고 그로 인해 애달프게 무거워지기 일쑤인 심사다. 무엇보다 장사치라면 없어서는 안 될 장사에 대한 집념이랄지 의지를 확 피울 불씨가 잘 댕겨지질 않는다. 그러다 존재의 이유에 대해 심각하게 회의하고 만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또는 '이래봤자 무슨 소용이람' 식으로.

   안 그래도 한갓진 점방을 적막으로 아주 침몰시켜 버리는 주인장의 쓸쓸한 표정이 불길했지만 그리 빨리 감행할 줄은 몰랐다. 문을 다시 열고 반 년도 못 되어서 4층 꼬치구이 점방을 내놨고 그로부터 두어 달 뒤부터는 아예 장사를 접었다. 마지막 영업일인 줄도 모르고 찾았던 날, 늘 먹던 스시탕을 내놓으면서 꼬치구이 주인장이 말했다.

   - 돈은 잃었을지언정 사람은 얻었다고 여길랍니다.

   부질없는 사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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