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대일 Oct 01. 2024

떠버리 용이

   2016년 2월, 그가 살던 아파트에 불이 났다. 화마의 아가리가 삽시간에 집안을 집어삼키자 그는 15층 베란다 난간에 매달린 채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았다. 천운으로 굴절 고가 사다리차가 근처 소방서에 대기하고 있어서 구조가 신속하게 이뤄졌기 망정이지 '생사의 기로'니 '죽을 고비' 따위 드라마에서나 뻔질나게 보았을 법한 클리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뼈저리게 느꼈던 게다. 병원에 입원해 화상 치료를 받으면서 그는 마음을 고쳐 먹었댔다. 화마를 피해 기사회생한 덕분에 인생은 전환점을 맞았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말이다.


   - 화재 원인 조사가 덜 끝난 탓에 잿더미가 그대로인 집을 찾았지. 마누라 몰래 장판 아래 깔아둔 비상금은 다 타 버렸고 사람 손이 닿지 않는 장롱 위에 숨겨둔 비아그라 오십 알도 그걸 담아둔 파우치와 함께 연기로 사라졌지. 그것들처럼 내 인생도 제대로 누려 보지도 못하고 연소되는 건 아닌가 싶더라구. 뭣 때문에 여태껏 아옹다옹했을까?


   이십 년 넘게 괴팍한 부옹富翁의 신임을 한몸에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회사를 박차고 다른 회사로 적을 옮긴 까닭이 화재라는 돌발적 계기가 발단이 되어 나다운 인생을 찾아보려는 심산에서 비롯됐는지는 당사자 입으로 들은 바가 없어 불확실하다. 5년 전 현지 신발 공장 설립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인도네시아로 떠난 뒤로 대면한 적은 없다. 화재가 이직과 상관성이 깊은지, 하여 지금 나다운 인생을 살고 있는지, 하여 과연 이전보다 행복한지. 언제고 재회를 한다면 그 대답을 꼭 듣고 싶다. 

   무례하고 제멋대로인 듯 비아냥거리는 말투가 거칠고 배려심이 없다라는 세간의 혹평이 없지 않지만 소탈하고 격의 없으며 꼼수랄 게 없는 허심탄회함이 더 크게 어필하던 떠버리 용이가 가끔 그립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