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새가 품은 감정이 아주 터무니없는 건 아니다. 생색내기로라도 깎새 점방에서 한 번만 머리를 깎았어도 이러진 않는다. 깎새 점방이 소재한 동네 지자체는 왕복 2차선 도로 변에다 주차선을 그어놓은 공영주차장을 관리하는데 그 운영을 민간에 위탁한다. 버스 정류장이 세 군데나 걸쳐 있는 긴 길에 말이다. 그 중 깎새 점방이 있는 구간은 개업한 이래 단 한 번도 깎새한테 머리를 깎지 않은 노인이 맡고 있다.
어깨는 구부정하고 입성은 추레하며(태가 안 나서 그렇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메이커) 전날 숙취가 가시지 않은 듯 안색은 늘 불그죽죽해서 병원에 누워 있어야 할 사람이 탈출한 게 아닌지 걱정을 자아내게 하는 노인이다. 허나 어림잡아 100m에 육박하는 노상 주차장 이 끝에서 저 끝을 쉬지 않고 왕래하는 모습에서는 언제 골골했냐는 듯 팔팔한 기동력을 선보여서 사람을 액면으로 판단하다간 큰코 다치기 십상이라는 걸 새삼 일깨워 준다.
막 개업했을 무렵이다. 주변 상인들한테 개업 선물을 돌리는데 노인이 눈에 자꾸 밟히는지라 하나 쟁여놨다가 스윽 건넸더니 빈말이나따나 고맙다는 말 한 마디 꺼내지 않고 맡겨놓은 거 되돌려받듯 당연하다는 식으로 굴길래 빈정이 살짝 상했더랬다. 낯이 설어 쑥스러워서 그러는가 본데 차차 나아지겠지 싶었지만 3년이 다 되도록 묻는 말에 단답으로 대답하는 사이에서 더 나아질 기미가 전혀 안 보인다. 그런데도 알고 지내는 동네 한량들하고는 시시덕거리는 장면을 자주 연출하는 걸 보면 노인의 실체가 무엇인지 도통 모르겠다. 살다 보면 말 섞기가 죽기보다 싫은 사람이 분명 있다. 주차 노인 입장에서 깎새가 그런 존재일 수 있고 그렇다고 해도 도리가 없다. 하지만 깎새가 진짜 빈정 상한 이유는 딴 데 있다.
공영 주차장을 월 주차로 이용하는 단골 개인택시 운전사가 주차 노인을 다루는 팁을 귀띔 해줬다. 전기차와 경차로 공영주차장을 이용하면 원래 요금보다 반값 할인되고 월 주차도 마찬가지랬다. 도로변이라고 해도 공영은 공영이고 자기 택시가 전기차이니 할인을 해주는 게 마땅한데도 노인이 제값 받겠다고 우겨서 구청 담당 부서에다 민원을 넣은 뒤 그 사실을 주차 노인한테 알렸다나. 그랬더니 기세가 확 꺾이더란다. 경차를 모는 깎새도 하루 주차비 3천 원(규정대로라면 2천 원쯤 할 거랬다)을 따박따박 받아 챙겨서 월 주차를 문의했더니 일 주차나 월 주차나 거기서 거기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 일언지하에 거절해 버린 주차 노인이 괘씸하던 차여서 기사 양반처럼 구청에다 확 민원을 넣을까 심각하게 고심했더랬다.
쉼터랄 데라고는 없이 사시사철 도로 이 끝에서 저 끝으로 어깨 굽은 몸뚱아리를 하염없이 끌고 다니는 노인네가 고개만 돌리면 투명한 점방 문 저쪽으로 빤히 눈에 밟히는지라 측은지심에 간간이 음료수다 군것질거리를 건네줘도 고마워하는 기색 한번 내비친 적 없다. 애시당초 살가운 구석이라곤 없는 노인네가 갑자기 표변하면 더 이상하겠거니 여기고 말면 그만이겠는데 이태가 넘도록 깎새한테 머리 한 번 안 깎는 건 좀 심했다. 물론 그 양반 머리 못 깎았다고 목구멍에 거미줄 쓸 일이야 있겠는가마는 열이 받는 소이는 따로 있다. 평소에는 벙거지 푹 눌러 쓰고 다니다가 숨겨놓은 단골 커트집에라도 다녀왔는지 깔끔하게 이발을 하고 온 날에는 벙거지 내팽개치고 맨머리를 쳐들고 다니니 도대체 무슨 심보란 말인가. 이쯤되면 눈치란 걸 맛있게 쌈 싸 드신 위인이라고밖에는 볼 수 없지 않나. 어쩌다 보니 차를 매일 몰고 다니게 됐고 퇴근할 때까지 온전하게 차를 간수하자니 공영주차장을 노상 이용하는 수밖에 없지만 주차 노인 행상머리가 눈꼴사나워 '민원'이란 걸 넣어 골탕을 먹일까 하루에도 열두 번은 고민한다.
한편으로 세상사라는 게 제 잇속만 채운다고 만사형통이 아님을 잘 아는지라 앙심을 억누르는 초인간적인 인내력을 발휘하면서 버티는 깎새다. 하루이틀 하다 접을 장사가 아니라서 매일 마주치는 동네 주민들한테 신망 잃어 좋을 건 없다. 3천 원 내던 주차비 2천 원으로 깎아 매달 주차비를 절감하면 경제적으로야 이득일지 모르겠으나 알량한 천 원 아끼려다 모난 돌이 정 맞듯 미운털 박히면 자칫 그 수백, 수천, 수만 배 후환이 되돌아올지 모를 일이다. 그런 측면에서 가까운 데 놔두고 다른 데 가서 머리 깎고 유세냐고 대거리하는 짓도 자기 무덤 자기가 파는 꼴이나 진배없다. 주판알 튕구는 이해득실로는 도무지 드러나지 않는 평판, 그 인심이라는 정서적 잣대가 얼마나 냉혹한지는 숱한 경험을 통해 겪어봤으니 시행착오를 자청할 까닭이 없슴을 잘 아는 깎새여서 오늘도 '그러려니' 넘어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