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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Nov 19. 2024

찔끔찔끔 손님

   깎새 경험 상 날이 차가워질수록 손님들 요구가 까다로워진다. 긴 머리가 구차하니 깔끔하게 치켜 올리라는 주문이 쇄도하는 습도 높고 무더운 계절이 오히려 일하기가 편하다는 소리다.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이 바리캉을 갖다 대도 무방하니까. 설령 가이드라인을 침범하는 실수를 저지른다손 "더운데 차라리 잘 됐지 뭐. 시원하고 좋구만" 손님 쪽에서 융통성을 발휘하니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하지만, 매서운 삭풍에 가로수 가지가 흔들릴 즈음이면 넉넉한 인심을 자랑하던 손님이 180도 달라진 변덕쟁이로 돌변한다. 계절이 바뀌면서 태세를 전환하는 손님을 깎새는 '찔끔찔'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구레나룻은 살려두고 덥수룩한 숱을 살짝만 정리해 달라는데 도대체 그 '살짝만'이 어느만큼인지 가늠을 못한다. 만약 손님이 초면이면 '살짝만'이라는 마지노선을 두고 마치 무언의 쟁투를 벌이듯 긴장 관계에 돌입한다. 앞거울을 째려보면서 깎새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손님 눈초리가 하도 매서워서 간담이 서늘할 지경이다. 손님 다루는 데 이력이 제법 붙었다고 자부했건만 그런 식의 긴장 구도는 여전히 부담스럽다. 행여 손님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못마땅한 짓을 벌이기라고 한다면, 깎새가 보기에 대수롭지 않다 해도 점방이 떠나갈 듯이 난리 나기 십상이다.

   특히 가을에서 겨울로 갈아타는 환절기 무렵엔 독이 오른 손님이 의외로 많다. 이를테면 치렁치렁한 숱을 솎으려고 숱가위를 들자마자 쌍수를 들어 뜯어말리거나 늦가을 낙엽이 우수수 지듯 머리털이 지상가상없이 잘려 나갔다 싶으면 작업을 중단시키고 거울 보기 바쁘다. 마음에 영 안 차 안색이 울그락불그락 달아올라 거기에 갖다 댔다간 손 데기 딱이다. 하여 그런 기미가 설핏 비치기만 해도 작업 템포를 확 늦춰야 한다. 괜히 점방 문을 열었다 닫는다든지 창문 너머 뒷마당을 실없이 내다보는 식으로 양상이 과열되기 전 공기를 식혀야 한다. 아, 꼴사나운 지경을 면하려는 깎새의 지난한 노력이 눈물겹지 않은가?

   작업을 간신히 마치고 커트보를 거두고 나서도 찔끔찔끔 손님은 요주의다. 두말없이 나가는 법이 없으니까. '살짝만'이 제대로 구현되었는지를 확인하려고 잣대보다 정밀한 눈대중으로 거울이 뚫어져라 꼼꼼하게 디다보는 수순을 꼭 밟고, 조금이라도 거슬리면 당장 수정을 요구하는 것도 정해진 수순이다. 이런 게 깎새 자존심에 기스를 내는 장면이다. 바리캉을 드는 순간 그가 누구건 손님이라면 한 사람 예외없이 일로매진해 스타일 완성에 심혈을 기울이는 깎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트보를 두 번 치게 해 분노를 유발케 하니 김장 배추 절이듯 그 잘난 머리에다 굵은 소금이라도 뿌리고 싶은 충동이 안 생길래야 안 생길 수가 없다.

   그런 찔끔찔 손님과 씨언하게 한 판 개싸움을 벌일까 작심하다가도 평판을 귀하게 여기는 깎새가 자진해 자멸의 수렁에 빠지는 우를 범할 리 없어 마스크 속에 숨어 씩씩거리다 만다. 그렇다고 이대로 속만 끓일 순 없으니 소극적이나마 반항의 기회를 엿보는데, 이런 쾌거를 이룬 적이 있었다. 구레나룻이 짝짝이라는 둥 옆머리를 덜 깎았다는 둥 군소리를 쫑알거리다 못해 땅이 꺼져라 한숨까지 푹푹 쉬는 찔끔찔끔이 요금은 계좌로 이체했다면서 점방 문을 막 나서려는 걸 "어, 아직 안 들어왔는데요" 되받고 가로막았다. 돈이야 진작에 들어왔지만(알림 소리) 받을 사람이 안 들어왔다고 뻗대는데 그냥 나가 버리면 먹고 튀는 놈이라고 인정하는 꼴이니 확인될 때까지 잠시대기할 수밖에 없다. 불쾌한 기색이 역력하건 말건, 못마땅한 시선으로 쏘아대건 말건 알 바 아니다. 영겁 같은 십여 초 정적이 흐른 뒤 휴대폰 화면을 응시하던 깎새 입에서 마침내 "고맙습니다"가 떨어지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휙 나가는 찔끔찔. 고것 참 쌤통이다.

   다만 소극적 반항이 가뭄에 콩 나듯이라는 게 아쉽다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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