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은 손님들로 넘쳤다. 덕분에 오후 2시 넘어서야 밥 한 술 겨우 뜰 수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부부로 보이는 중년 남녀가 등장하는 바람에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들이붓고 말았지만. 설거지거리라곤 밥그릇, 수저가 다여서 손님들한테 잠시만 기다려 달라 부탁을 했고 흔쾌히 응한 남자가 대기석에 앉아 리모컨을 작동하는 것까진 다용도실 주방에서 지켜봤다. 그 남자가 어떤 채널로 돌렸는지는 싱크대 물 틀어놓고 열나게 설거지하느라 못 듣고 못 봤다.
설거지를 마치고 다용도실을 막 나오려는데 TV 화면이 눈에 들어왔고 못 볼 꼴을 보고 만 사람처럼 꼭지가 돌아 버렸다. 0.7% 차로 겨우 당선됐으면서 지지율 70%처럼 행세하는 이 나라 국가수반이란 작자가 보도전문 채널에서 딴 나라 국가수반하고 악수하면서 환한 표정을 짓는 장면. 기자인지 앵커인지 두 나라 우호 증진 어쩌구저쩌구 구린 멘트가 배경으로 깔리면서 말이다. 케이블 채널이 수많아도 정확하게 2022년 5월 10일부터 2027년 5월 9일까지 그 화상이 등장하는 뉴스 채널만은 그것이 무슨 내용이건 막론하고 틀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하늘이 보우하사 그 시한이 앞당겨지면야 더할 나위 없겠으나 돌아가는 분위기로 봐선 5년 꽉 채울 태세이니 속에서 천불이 날 바에야 이쪽에서 정한 5년을 꾹 참아 보겠다는 신념을 견지한다(신문 헤드라인에 등장하면 신문을 뒤집어 놓았다가 맨 뒷장부터 읽는다).
신념을 드러내고 손님들한테 동참해 달라 요청하는 건 암만 생각해도 오버인지라 대기석에서 차례를 기다리다 무료한 나머지 리모컨 놀이를 시전하는 손님이 뉴스 채널에 시선을 고정시킨들 막을 도리가 없다. 가증스러운 면상만 쏙쏙 피해 가는 뉴스라면 그나마 다행이겠으나 채널 특성 상 용산을 비추면 기본 시청률은 보장받기라도 하는 듯 노출 빈도가 높은 관계로 자칫 방심하다간 진절머리나는 목소리까지 설상가상 더해져 커트 작업에 심대한 위해 요인으로 작용할 때가 없지 않다. 하여 주야장천 예능이나 드라마 채널에다가 꽁꽁 고정시킨 뒤 리모컨은 깎새만 아는 구석진 데다 숨겨두는 꼼수를 부리는 게다. 그런데 그날은 그 남자 리모컨을 어찌 득했는지 너무도 수월하게 뉴스 채널로 돌려버렸고 화면 가득 면상이 득세하는 참변이 벌어지고야 말았으니.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깎새라는 개인 본연의 정신 건강을 염려해 강구하는 자구책일 뿐이었다. 다용도실을 나와 남자를 이발의자로 안내하자마자 리모컨을 빼앗듯 꿰차고선 예능 채널로 확 바꿔 버렸다. 그런 깎새 행동선을 따라가는 중년 남녀 표정은 뜨악함 그 자체였다.
"정신 건강을 해치는 얼굴은 안 보는 게 상책입니다."
다분히 의도된 불경을 자행한 뒤 양해랍시고 씩둑거렸다. 그러고선 묵언수행하듯 손님 뒤통수만 집중하다가 벌겋게 상기된 남자 손님을 앞거울을 통해 발견하자 희한하게도 홀가분하고 상쾌해졌다. 앞으로 재방문은 절대 없을 손님이라는 체념으로 마음 무거워야 정상이건만 채널을 돌렸다는 안도감이 그걸 상쇄하고도 남았다고나 할까. 그 남자가 빨간색 도착증이 있는지 당색도 빨간색, 로고까지 빨간색인 것도 모자라 동네에 내건 현수막에 쓰인 문구까지 빨간색으로 도배질을 하는 빨간색투성이면서 정작 빨갱이는 무지 싫어하는 어떤 정당의 골수 당원이건 말건, 길 가는 사람 열 명한테 물었더니 여덟 명 넘게 아니라고 하는데도 기어코 맹신하는 콘크리트층이건 말건 싫은 건 싫다고 한 스스로가 정말 뿌듯한 깎새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