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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Nov 23. 2024

업종 변경을 시도하는 남자

   그제 마감 직전 점방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이발학원에서 동문수학했던 남자였다. 그가 깎새 점방을 그날 처음 찾은 건 아니다. 재작년 봄, 그러니까 깎새가 개업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 두루마기 휴지롤을 개업 선물로 건넸었다. 작년 봄 안부 묻는답시고 연락이 온 뒤로는 감감무소식이었다가 그제 자양강장제 박스를 들고 불쑥 또 나타난 것이다. '학교 동기만 동기냐 이발학원 동문수학도 동기다'라는 남다른 동료애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는 것쯤은 남자의 고민을 아는 깎새로서는 손쉽게 간파하는 바이다. 잊을 만하면 느닷없이 나타나는 기행奇行은 그의 고민이 해소되지 않는 한 앞으로도 주욱 이어진다는 데 깎새 오른팔과 전 재산을 걸 수 있다.

   이용사 자격 시험을 한 번에 합격한 때로부터 따지자면 서너 해째 망설이다 세월만 축낸 그다. 하루라도 빨리 지금 하는 일을 청산하고 커트점 원장님으로 변신하고 싶지만 미진한 그 무엇이 계속 그의 발목을 잡고 안 놓아주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자기만 즐거워서 밀어붙일 사안은 또 아니다. 가족들 생계와 직결된 문제라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건 당연하다. 무엇보다 지금 하는 업만으로도 먹고 살 만하다면 굳이 업종 변경을 할 당위성을 가족에게 충분히 납득시키는 게 더 시급해 보인다. 문제는 일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동력이 아직도 약하다는 데 있다. 그걸 완곡하게 표현하자면, '2% 부족한 기술'쯤 되려나. 그것이 미진한 그 무엇인 셈이다.

   본업은 한 대형 사우나 안에 세 든 마사지숍을 아내와 운영하는 안마사이다. 그가 이발 기술에 연연하게 된 사연을 들은 적 있다. 사우나 안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는 이발사가 늙어서도 해먹을 수 있는 유망 기술이 이발이라는 꼬드김에 홀딱 넘어가 그길로 이용학원 자격증반에 접수한 게 2020년 가을께였다. 그때 처음 깎새와 안면을 텄다. 사람 머리가 아닌 가발에다 대고 연신 가위질하던 어느날, 학원 다른 켠에서 무료로 이발을 해주는 실무반(자격증을 취득한 원생이 실제 머리를 두고 실무를 익히는 반. 거기도 만만찮은 학원비를 지불하고 들어간다)을 가리키면서 왜 자기한테는 사람 머리 깎는 법은 안 가르쳐 주냐고 원장한테 대들었다.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 나가야 실력이 는다는 설명에도 고집을 부리는 통에 마지못해 실무 기술까지 병행한 원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급하게 서둔다고 얻을 기술이면 달려드는 족족 다 프로가 됐겠다며 빈정대는 걸 잊지 않은 늙은 원장. 아니나다를까 자격증 대비반, 실무반 그 어느 곳에도 안착하지 못해 어색하고 서투르기만 했다. 천성인지는 몰라도 일마다 설렁설렁 여물지 못하고 태도까지 불성실해 입길에 자주 오르내렸는데 그 습벽 때문인지 시간이 지나도 기량이 나아질 기미가 안 보였다. 

   학원을 팔고 은퇴를 선언한 늙은 원장에 이어 야심만만한 젊은 원장이 새로 학원을 꿰차자 남자는 종적을 감춰 버렸다. 그리고 몇 달 뒤 치른 이용사 시험 결과가 나온 직후 그는 학원을 다시 찾았다. 다른 학원 자격증반에 들어가 덜컥 합격을 한 뒤 실무 기술은 무료이발이라 사람 머리 커트할 기회가 많은 이 학원이 유리할 성싶어 돌아왔다고 재등장의 목적을 무덤덤하게 밝혔다. 학원 주인이 바뀌는 어수선한 분위기를 피해 목전에 둔 목표를 달성하려는 반지빠름이 능력이라면 능력이니 왈가왈부할 바는 아니나 사람 많은 싸전에서 쌀 집어 먹는 병아리마냥 약아빠진 처신이 얄미운 건 어쩔 수 없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댔다고 한 번만에 덜컥 이용사 자격증을 따 기세등등해진 남자는 학원 새주인인 젊은 원장한테 기술을 배우면서 무료 이발을 열나게 깎아댔다. 그러고 한 달쯤 지난 어느날, 슬며시 다가와 대단한 비밀이라도 발설하는 양 낮은 목소리로 뇌까렸다. 

   "학원 그만둘까 합니다. 젊은 원장 기술 좋은 건 알겠는데 나하고는 영 안 맞아요."

   무슨 바람이 불어서 또 변덕인가 마뜩잖았지만 이해가 아주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젊은 원장은 주로 가위를 이용해 나름 고급지고 세련된 기술로 스타일을 꾸며 고단가를 창출하는 기술에 천착했다. 그런 원장을 우러르는 실무반 원생들이 없지는 않았으나 저렴하면서 경쟁력있는 요금에 박리다매를 추구하는 남성 커트를 지향하는 이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다. 무엇보다도 원장이 자랑하는 때깔나는 고난도 기술을 수학하자면 그에 상응하는 비싼 학원비와 더 많은 공력까지 요구받지만 내일이라도 당장 현장에 투신해 지지고 볶아도 시원찮을 생계형 원생들한테는 왠지 부질없는 짓으로 여겨졌다. 역동적인 현장성에 목을 메는 남자도 같은 입장이었다. 현장에서 부대끼며 실전 감각을 체득함으로써 기술적 핸디캡을 상쇄하려는 의도는 영리하고도 유익한 발상이었다. 그런 그에게 공감한 깎새는 부친을 소개해줬다. 60년 이발 이력을 자랑하는 고수에게서 깊은 영감을 얻기를 진심으로 바랐고 그에 부응하려는지 남자는 부친 점방 문지방이 닳도록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늦은 나이(깎새보다 연배가 두서너 살 높다)에 기술까지 얼떠 어디 다른 커트점 시다 자리조차 언감생심이라는 냉정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부친은 은근히 살뜰하게 챙기는 눈치였다. 아마도 남자가 고백한 속사정을 듣고 애가 쓰여서였을 게다.

   떼돈은 못 벌지언정 마사지하면서 먹고살 만은 하다. 하지만 역병이 모든 걸 바꿔 버렸다. 사우나엘 오지 않는 손님이 마사지하러 올 리 만무했다. 역병이 잡히더라도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하리란 불길한 예감에다 마사지 기술 하나로는 밥 빌어먹기 어렵겠다는 위기감까지 겹치니 이웃 이발소 주인 귀띔에 솔깃해질 수밖에 없었단다. 그렇게 남자는 현재와는 다른 장밋빛 미래를 꿈꾸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거기에 도달하는 과정이 험난하다는 건 미처 염두에 두지 못한 모양이었다. 한 마디로 너무 쉽게 봤다는 것. 자격 시험은 요행히 한 번에 통과했지만 자격증과 실무는 엄연히 달라서 학원에 더 목을 매었건만 다닐수록 갑갑증은 더했다. 부친 점방에서 보고 듣고 겪은 현장 체험은 충분히 유익했지만 실전에선 턱없이 모자랄 제 능력에 절망했단다. 허접한 시다 자리조차 어울리지 않는다는 부친의 냉정한 평가가 남자를 각성시키면서도 한편으로 속이 타들어갈 지경이었다나. 자리를 잡을 날이 언제일지 그 요원함이 사람을 옥죈다면서.

   소식 뜸한 동안 마사지 본업에 집중했으나 더 지체할 수 없어 매물을 알아보러 다니며 이발학원 실무반에 다시 들어가 틈틈이 손을 푸는 중이라고 남자는 최근 근황을 밝혔다. 며칠 전에는 모처럼 깎새 부친 가게에 들러 눈여겨 본 매물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고도 전했다. 변화를 꾀하려는 남자 표정에 조급함이 역력했다. 시간이 제법 지났고 나름대로 기술에 감을 잡았다고 자신있게 밝힌 남자 입에서 물어볼 게 있다면서 커트 기술을 새삼 들먹이자 깎새는 하마터면 한숨을 내쉴 뻔했다. 가장 기본적인 기술을 아리송해하는 걸 보니 그 미진한 무엇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음을 직감한 까닭이겠다. 그래 가지고서는 앞날을 보장할 수 없지만 잔소리같은 대꾸는 자제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고민만 하다간 지쳐 버리고 만다. 일단 부닥쳐 보고 스스로 터득하는 게 어쩌면 그 미진한 무엇을 빨리 해결하는 지름길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하루라도 빨리 좋은 점방을 잡아 개업하라고 깎새는 차라리 독려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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