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모임으로 왁자지껄해야 할 시즌이지만 어수선한 분위기여서 예전만 못하지 싶다. 모든 게 깔끔하게 처리가 되어야 편하게 즐기 수 있지 않겠나. 아무튼 연말 즈음이면 한 연말 모임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이 불쑥 소환된다. 개인적으로 무척 인상적인 장면이 찍힌 사진이어서다
대학생 시절 같은 동아리 동기들(1991학번)이 30년 가까이 지났을 무렵 기별이 닿은 이들끼리 모여 조촐한 연말 모임을 가진 흔하디 흔한 기념 사진이었다. 식탁을 사이에 두고 네댓 명이 일어나 건배를 하는 모습이었는데 깎새는 사진 속 홍일점인 여자와 그 맞은 편에서 그녀와 잔을 치는 한 남자를 주목했다. 그는 그녀를 외사랑했었다. 외사랑이라고는 하나 그녀도 영 싫지만은 않았는지 제법 잘 어울려 다녔다. 아주 배타적이지는 않았다는 소리다. 하지만 그녀가 좋아하는 사람은 정작 따로 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남자는 실성하다시피 낙담했다. 남자와 허물없던 깎새였어도 그런 그를 위로해 주지 못했다. 여자가 마음에 둔 남자가 다름아닌 깎새와 막역했던 다른 동기였던지라. 여자 마음을 얻지 못한 남자는 이후 휴학계를 내고 강원도 광산으로 훌쩍 떠났다. 지금 돌이켜보면 굳이 광산까지 갈 일인가 싶지만 실연의 상처라는 게 당사자가 아니면 결코 감당하기 어렵게 아리다는 방증 같아서 짠한 건 여전하다.
그 사진이 단톡방에 올라오고 얼마 뒤 난데없이 변덕이 인 깎새가 제 발로 그 방에서 나오는 바람에 재회한 감회를 당사자들한테 직접 들을 소중한 기회를 스스로 차버렸다. 하필이면 그때 단톡방은 왜 나왔는지 뼈저리다. 혼자 궁금해 미칠 지경에 이르렀다고 해서 그 남자 혹은 그 여자한테 득달같이 연락을 해 "다시 만나니 기분이 어땠어?" 따위 물어보는 것만큼 씨상이 짓도 없을 테다. 그래서일까? 연말 모임으로 왁자지껄하는 시즌이 되면 그 사진을 떠올리면서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하는 실없기 짝이 없는 깎새다. 혼자서 그런 재미를 만들어 연말을 보내는 것도 썩 나쁘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