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도록 말하듯이 쓰겠다는 원칙을 세워 버릇을 들이려고 애를 쓰는 중이다. 원칙이라고 거창하게 표방은 하지만 몇 개 안 되는 일종의 약속이다. 그것들 중에서 '부사+동사' 용법을 자연스럽게 쓰자에 가장 심혈을 기울인다. '형용사+명사'는 딱딱하고 어색해서 우리말과 글에 별로 안 맞는다고 여겼다. 특히 '~의'가 들어갈 자리에 동사와 부사를 적극 활용하겠다고 다짐한다. 그 다음은 문장을 끝맺으려 할 때 '~것이다'를 의도적으로 피해 문장을 보다 매끄럽게 해보겠다는 다짐이다.
일본말 '~の'를 오용, 남용했다고밖에는 볼 수 없는 '○○의 ○○'가 끼친 폐해는 심각하다. 써놓고 보면 어색하기 짝이 없는데 이미 글버릇이 되어 버린데다 아니 쓰면 괜히 불안하다. 언론사에서 교정 교열 일을 30년 간 해온 이병철은 저서 『모국어를 위한 불편한 미시사』(천년의상상, 2021)에서 '○○의 ○○' 예문들은 편의성만을 지향하느라 문법과 구문을 망가뜨리는 대표적인 예라고 지적했다. 언론사 교정 교열 현장에서 마주했던 우리말과 글을 최전선에서 지키고 다듬어왔던 경험들을 기술한 책 내용 중에 '~의' 오용, 남용 대목에 깎새가 유독 꽂힌 까닭은 해서는 안 될 짓을 버젓이 저지르고도 글을 쓴답시고 깝죽대는 몰지각이 창피해서였다.
저자는 책을 집필하면서 인용문 외에는 '~의'라는 조사를 한 번도 쓰지 않았고 문장을 '~것이다'(강한 단정을 나타내는 일본어 '~のだ', '~のである', '~のです'를 닮은)로 끝맺지 않았다고 머리글에 당당히 밝혔다. 그래서일까. 책은 술술 읽혔고 구문은 매끄러웠다. <'~의'를 어찌하오리까>라는 소제목으로 무려 40페이지 넘게 '~의'가 끼친 폐해를 조목조목 나열하고 '~의'를 대신해 제대로 쓰는 방법을 제시한 대목은 압권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인상적인 대목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의 ○○'에서 두 ○○ 중 하나가 행위성 명사(혹은 형용사적 어근인 명사)냐 아니냐를 먼저 따져야 한다고 본다. 일반명사라면 그대로 놔두거나 '의'를 빼서 합성명사(복합 명사)로 만들면 되지만, 명사 하나가 행위성 명사나 형용사적 어근인 명사라면 문장 틀을 바꾸어야 한다. 그 명사는 처음부터 동사나 형용사로 써야 했기 때문이다. 앞말이나 뒷말 중 하나가 거기에 해당하면 다음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써서 제대로 고칠 수 있다.
하나. 앞말을 관형사로 바꾸기
◎ 영채를 자유의 몸을 만들고(『무정』)
-> 영채를 자유의 몸으로 만들고(형용사적인 어근에 '의'를 붙임)
-> 영채를 자유로운 몸으로 만들고(형용사 '자유롭다'를 관형사로)
-> 영채를 자유롭게 만들고(형용사 '자유롭다'를 부사로)
둘. '~의'를 주격 조사로 바꾸고 뒤에 동사를 넣기
◎ 교육부의 2019년 교육 기본 통계이다 ( -> 교육부가 발표한)
◎ 나의 연구에 걸림돌이 될지도 모른다 ( -> 내가 하는 연구)
행위성 명사에 '의'가 붙은 경우는 앞 명사에 붙은 '의'를 떼어내고 대신 '하다'를 붙여서 관형사로 바꾸면 문장이 간결해지고 어법에도 맞는다.
◎ 배달의 민족 ( -> 배달하는 민족)
◎ 비난의 소리가 들끓었다 ( -> 비난하는 소리)
동사나 형용사로 바꿀 수 없는 말도 있으리라. 그렇다면 'ㄴ', '~한' 꼴을 갖추어 구나 절로 만들면 된다.
◎ 전교생 스물네 명의 시골학교 ( -> 스물네 명인/스물네 명뿐인)
'○○의 ○○' 다음으로 일본어 の가 우리글을 망가뜨렸다고 꼽을 것은 무엇일까. 동사 몫을 명사가 차지해 그 결과로 동사가 행위할 대상인 목적어가 사라지고, 행위를 꾸밀 부사도 사라진다. 우리글 구문이 근본부터 무너진다.
◎ 팬데믹의 성공적인 극복을 위해 ( -> 펜데믹을 성공적으로 극복하려고)
◎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촉구했다 ( -> 6자회담을 조속히 재개하자고 촉구했다)
동사와 부사에는 우리 토박이말이 많다. 보글보글, 시나브로, 쏜살같이, 빨리빨리처럼 정겹고 생동감 넘치는 부사와 역동적인 동사가 빠지고 한자어 명사가 나열된 글은 무미건조하다. 공문서, 브리핑, 프레젠테이션에 쓰이는 소제목들이 그렇다. 고등학교 <문법> 책도 예외가 아니다.
(…)
부사와 동사가 사라짐은 글 생활과 말 생활이 서로 달라짐을 뜻한다. 마케팅 강사가 가리키는 스크린에는 '신속한 배달'(형용사+명사)이라는 글이 떠 있는데, 강사는 '빨리 배달해야 합니다"(부사+동사)라고 말한다. 왜 자막에도 '빨리 배달하기'라고 쓰지 못할까. 우리가 날마다 듣는 날씨 정보에서건 어디서건 이렇게 '형용사+명사'가 '부사+동사'를 몰아낸 말과 글이 넘쳐난다.(이병철,『모국어를 위한 불편한 미사사』, 천년의상상, 2021, 303~30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