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통로에다 시화를 길게 전시한 전철역이 간혹 있다. 거기가 어딘지 가물가물하지만 인상이 워낙 강렬해 메모해 둔 시가 있다.
너,
누구냐
나,
모르겠다
시를 쓴 이는 모르겠다. 가볍게 던진 잽 같은데 의외로 가공할 만한 시다. 간결이란 표피에 덮힌 의뭉이 시의 본질이라고 말하는 성싶기도 하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면 시를 쓴 소기의 성과를 달성한 셈이라는 얄팍한 타산이 도사린 것도 같다.
'모호한 존재성'이라는 주제가 진부하기 짝이 없다. 또 그 주제를 가지고 읊조리는 게 얼마나 상투적인지를 시를 쓴 당사자도 모르지는 않을 터. 허나 어리석은 줄 뻔히 알면서도 묻지 않을 수가 없다는 <우문현답>. 하여 시는 제목이 살렸다.
『리어왕』에 나오는 대사다.
"아아 나는 잠들었는가, 깨어 있는가. 누구,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가 없느냐."
21세기 한반도에서 왕 노릇하려다 비참한 말로에 직면한 자는 자문했어야 했다.
'나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