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학생

by 김대일

다음달부터 견학생이 깎새 점방을 드나들 예정이다. 깎새가 다녔던 이발학원 출신 여자분이 소개를 받아 엊그제 깎새를 찾아왔다. 남자 커트를 겸한 염색방을 차리겠다는 포부를 내비친 그녀는 현장 실무에 목말라했다. 요양병원을 돌아다니며 이발 봉사로 감을 익힌다고는 하지만 그걸로는 역부족임을 절감하고 있었다. 언제든지 와서 원없이 보라고 눙쳤다. 명절 연휴가 끝나는 2월부터가 낫겠대서 그러라고 편하게 응수했다.

다른 분야는 모르겠고 이발 기술에 한해서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현장에 뿌리 박고 직접 부딪혀봐야 기량이 는다는 철칙을 고수하는 깎새다. 제 아무리 국내 최고 가위손 문하생이라 한들 가발에다 대고 가위질한 기술이 실용적일 리 없다.

등에서 식은땀이 줄줄줄 흐르고 오한 들린 듯 바리캉 든 손이 덜덜덜 떨리면서 손님 머리를 깎는다. 어렵사리 깎고 났더니 어수룩한 팔푼이가 머리를 개판으로 해놨다는 타박이 비수처럼 날아든다.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든 심사로 내가 정말 천하의 무용한 인간 말종일지 모른다는 지독한 좌절감에 내몰린다. 하지만 입때껏 쏟은 시간과 공력이 아까워 차라리 여기서 뼈를 묻을지언정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본전 회수 의지가 결기로 화함으로써 마침내 현장에서 살 길을 모색하는 진정한 실무형 인간으로 거듭나야지만이 하루라도 빨리 깎새 명함을 내밀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기술적으로 미숙할지 몰라도 재빨리 학원이라는 온실을 나와 전쟁터나 다름없는 모진 현장으로 자진해 들어선 견학생이 대견하다.

견학을 거쳐 수습으로 나아갈지는 두고볼 일이다. 어차피 개업이 최종 목표라면 백문 불여일견하다가 백견 불여일행으로 넘어가는 게 자연스러운 수순이긴 하다. 깎새 밑에서 보고 배워 기술적으로 진보할지 퇴보할지도 관전 포인트다. 깎새는 성의를 다해 도와줄 작정이다. 이러라고 있는 게 동업자 정신이니까.

견학생한테 이것만은 꼭 강조하고 싶다. 지금을 즐기라고.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知之者, 不如好之者 ; 好之者, 不如樂之者). (논어 옹야편)

작가의 이전글나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