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주둥아리의 가벼움

by 김대일

초면에 괜시리 친한 척하질 않나 그러자니 슬쩍슬쩍 하대하는 언사가 눈꼴사나운 손님. 결정적으로 그렇게 떠들어대는 목소리에 술기운이 묻어나오니 급기야 심사가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는 깎새. 손님이란 작자가 벌이는 일련의 행태를 술주정에서 비롯됐는지 아닌지에 따라 향후 대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낮술에 전 불청객이 끼치는 물적, 정신적 손해는 작지 않다. 가진 건 카드뿐이니 은행 가서 돈을 뽑아 요금을 지불하겠다 호언장담하고선 그길로 내빼는 진상 아니면 명정으로 몸뚱아리조차 가누지 못해 작업에 막대한 애로를 끼치는 골칫덩이, 깎새한테 전혀 도움이 못 되는 부류일뿐이다.

들어온 그대로 들어서 점방 밖으로 내던져 버리고픈 충동을 '손님은 매상이고 돈이다'라는 주문을 되뇌어 가까스로 참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요리해야 신상에 이로울지 자구책을 나름대로 거듭한 끝에 주사를 부리든 말든 무시하고 일단 작업에만 몰두하는 게 가장 좋고 편한 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술내 풍기는 낌새 야릇한 손님이 "엄마와 마누라가 싸울 때 누구 편을 들어야 하나", "주인 양반, 내 말이 재미없어?", "요렇게 깎아달라는 말 못 알아 먹겠어? 다시 설명해 주까?"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씨월거리든 말든 할 일만 하는 깎새는 자기가 세운 행동지침을 충실히 따랐을 뿐이다. 한 대 갈기면 딱 알맞게 둥글넓적한 뒤통수가 자꾸 깎새 눈에 밟히던 순간, 구원자인 양 점방 문을 열고 다른 손님이 입장했다.

볼일 다 봤음 요금 내고 그냥 나가면 될 일을 집이 근처인데도 커트점 있는 줄 여태 몰랐다는 둥 잔사설이 또 한참 길다. 앞으로 자주 올 테니 잘 부탁한다는 청천벽력을 싸지르고 겨우 자리를 떴다. 그러거나 말거나 다음 손님을 앉히고 커트보를 두르는 깎새.

"고부 갈등을 나보고 어쩌라는 건지. 낮술 한 잔 걸치셨는지 말끝마다 누룩내 비스무리한 게 풍겨서 혼났습니다. 자시려면 좀 곱게 자시든가."

"···."

"한 잔 걸친 손님이 이발의자에 앉으면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닙니다. 작업하는 데 애로가 심해요. 안 졸면 말이 많지, 꾸벅꾸벅 졸면 머리통이 흔들흔들거려서 진땀깨나 흘린답니다. 술 마시고 머리 깎으러 오는 건 암만 좋게 봐주려고 해도 경우 밝은 짓은 아닙니다."

"나도 한 잔 하고 오는 길인데···."

아차 싶었던 깎새가 가라앉은 분위기를 추스르려고 잔머리를 굴러 봤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별안간 "술안주로 뭐 잡쉈어요?" 물어볼까 하다가 뚱딴지도 유분수라 관뒀다.

"손님 들으라고 한 말이 아니고 나간 분이 하도 수다스러워서···."

별수없어 둘러댔지만 채신머리사납게 됐다.

커트 작업이 끝날 때까지 그 손님 말문을 아예 닫아건 건 말할 것도 없고 눈 감은 채 고개 빳빳이 들고 미동도 않는 품이 깎새를 향해 침묵시위를 벌이는 듯했다. 입이 방정이다. 참을 수 없는 주둥아리의 가벼움에 새삼 절망하는 깎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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