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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오

by 김대일

한동안 발길을 끊었던 단골이 엊그제 불쑥 찾아왔다. 1년 7개월 만이라 점방 위치가 가물가물해 한참을 찾았다면서 그간 격조했던 까닭을 슬그머니 털어놓는데, 빵에 갔다 왔댔다. 겉으로 드러난 인상만으로 판단하자면 그는 매우 솔직담백한 성향이로되 굳이 떠벌일 필요가 없는 치부까지 드러내다 보니 오히려 당황한 쪽은 깎새였다. 명의를 빌려 줘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는 바람에 공범 취급을 받아 옥살이를 했다면서 애써 억울해했지만 없는 죄를 만들어 애먼 사람을 죄인으로 뒤집어씌울 리 없어서(요새 검찰이라는 암덩어리 집단이 자행하는 행태를 보자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지만 아무튼) 무조건 두둔하기가 뭣해 옥바라지하느라 고생한 가족들 근황으로 화제를 슬쩍 돌렸다. 막 초등학교 입학한 딸이 좋아하는 쟁반짜장을 먹기 전 점방에 들러 아빠 머리 깎는 모습을 구경하러 왔던 1년 7개월 전 세 가족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어서다. 아빠를 끔찍히 좋아하던 어린 딸, 모르긴 몰라도 신뢰와 무한 긍정의 시선으로 남편을 바라보던 아내가 무척 인상적이었던.

하지만 그 가족이 본격적인 글감이 아니다. 우선 그가 슬쩍 내비친 파편적인 정보로 글을 완결해내기란 쉽지 않다. 갑작스럽게 시련이 닥치자 그걸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노정되었을 가족들의 애환을 직접 확인하지 못했을 뿐더러 사달을 일으킨 자가 모두 수습했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하는 것 역시 순순히 받아들이기 어려워서다. 직접 보고 듣지 않았으니 진척될 리 만무한 글감이다.

그보다는, 우발적이든 의도적이든 과오를 범한 자가 밝혔던 고백이 돌이키고 싶지 않은 수치스런 과거를 소환하게 하는 빌미를 제공해 깎새 속을 들쑤셔 놓은 게 더 곤혹스럽다. 언급하는 것조차 부끄러운 짓을 자행했던 과거 속 깎새가 모든 죄를 속량했다고 항변하는 현재의 깎새를 비웃고 있다. 시효가 아직 다하지 않은 어떤 여죄가 불쑥 튀어 나올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현재의 깎새는 심하게 동요한다.

불청객인 양 과거의 깎새가 느닷없이 들이닥치면 속절없이 허물어지고 마는 탓에 깎새는 늘 마음이 아프다. 안 아픈 척할 뿐 노상 아프다. 과거를 극복하지 않으면 제 속만 문드러진다고 누군가는 충고하지만 과거의 죄업은 영혼에 잔상으로 콱 박혀 죽지 않고선 떨쳐낼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여지껏 저지른 짓짓이 가당찮아서 깎새는 스스로를 죽도록 경멸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속죄될 리 만무해 시난고난 앓을 뿐이다.

글 쓰는 짓은 그런 연약한 자존심을 추스르는 유일한 치유책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시시껄렁한 글줄 따위라도 끼적대지 않으면 그토록 무참한 자책감을 달랠 길이 없다. 준동하는 과거의 예봉을 꺾어 놓아야지만이 내일을 겨우 기대할 수 있다는 위안, 1년7개월 만에 나타난 단골을 보면서 새삼 다지는 각오다.



신이여, 바라옵건대 제게 바꾸지 못하는 일을 받아들이는 차분함과 바꿀 수 있는 일을 바꾸는 용기와 그 차이를 늘 구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라인홀드 니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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