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자뷰

by 김대일

깍짓동만 한 덩치에 머리털 덥수룩한 사내를 데리고 중년 여성이 점방으로 들어온다. 건장하지만 애리애리한 티를 숨기지 못하는 사내 표정이 맹하기 짝이 없고 새끼 오리마냥 여성 뒤만 졸졸졸 따라다니는 품으로 봐서 두 사람 관계랄지 사내가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 따위를 대강 짐작하는 깎새. 자기 머리처럼 깎아 달라는 여성 주문이 하도 꼼꼼해서 바리캉 집어 든 손에 자기도 모르게 힘이 살짝 들어간다.

데자뷰. 등장인물과 상황이 거의 똑같았다. 그때 모자母子가 더 늙었다는 것만 빼고. 깎새가 이발학원에서 무료 이발을 하며 실무를 배우던 4년 전이었다. 자폐성 장애를 겪는 아들을 데리고 다니는, 지팡이가 없으면 걸음조차 힘겨운 허리 굽은 노모의 복잡미묘한 표정을 여전히 기억한다. 무덤에 들어가서도 눈을 고이 못 감을 고단하고도 애달픈 모성애가 그 표정에 담겨 있었다면 상상이 갈까.

지팡이를 짚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자폐성 장애를 가진 쉰 다섯 먹은 아들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 이용학원까지 기어이 올라오는 노모. 어제 깎아도 오늘 금방 덥수룩해지는 머리카락은 짐승털마냥 빳빳하고 거칠어서 깎는 데 무진 애를 먹다 보니 노모는 꼭 무료 이발을 해주는 이발학원에서 아들 머리를 깎게 한다. 돈 안 드는 건 차치하고 영업장에 폐 끼치기 싫은 일종의 강박증 탓이겠다. 일전에 아들 머리를 두어 번 만진 깎새가 제 딴에는 안면 텄다고 노모에게 말을 건넸다.

- 아드님 혼자서 머리 깎으라고 하이소.

- 꼭 데불고 가라고 성환데 될 일인교.

- 평생 이럴 순 없을 낀데.

- 세 살 아래 동생이 하나 있긴 한데.

- 동생은, 괜찮은가 보죠?

- 멀쩡합니더. 낼모레 출가시키도 될 다 큰 딸내미도 있으요.

- 근데 뭔 걱정입니꺼?

- 저런 시숙 델꼬 댕길 제수가 어디 있겠능교.

시시덕거리는 성싶어도 노모는 당신 사후가 너무 걱정이었던 게다. 작업을 다 끝낸 뒤 아들 스타일이 어떻냐고 물었다.

- 됐심더. 잘 깎았네예.

노모 공치사가 끝나자마자 쉰 다섯 아들도 거들었다.

- 씨언하다!

- 그기 뭐꼬? 슨생님한테 고맙다고 해야제.

- 고맙슴다!

두 눈은 허공을 올려다보고 고개만 까딱거리는 인사가 정겹긴 처음이다.

- 어무이, 내가 다다음 달까지는 이 학원에 있을 낍니더. 오늘 이발했으니 두 번 정도는 내가 아드님 머리를 책임지고 깎아 줄 테니 꼭 나한테 깎겠다고 하이소.

4년 전이었으니 쉰 다섯 아들은 환갑이 코앞이겠고 허리 굽은 노모는···모르겠다. 서면 부전시장 무료이발 해주는 학원 주변을 서성이다 보면 늙은 모자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4년 전처럼 아들 손 꼭 잡고 굽은 허리 지팡이에 의지해 앞장서는 노모를 다시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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