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캉에다 6밀리 덧날을 장착해 전체적으로 싹 민 뒤 3밀리 덧날로 바꿔 끼워 옆머리를 다듬으면 멋드러진 스포츠형 스타일로 변모한다. 3년 전 깎새 개업할 무렵부터 그 스타일을 고수 중인 40대 단골 직업은 타투이스트다. 부산 서면에 영업장을 마련하기 전까지는 캄보디아에서 10년 넘게 체류했다고 한다. 더운 나라에서 오래 머물러서인지 몰라도 피부는 구릿빛에다 문신까지 온몸을 휘감고 있다 보니 다분히 위악적이지만 몇 마디 나눠 보면 금세 순둥이임이 드러난다.
10년 동안 캄보디아에서 <블랙○○>라는 간판을 내걸고 외국인을 상대로 타투를 그려줬다. 아는 형과 시작한 사업은 승승장구했다. 캄보디아 현지인 월급이 100불일 때 시간 당 80불을 벌 만큼 성황을 이뤘으니까. 운전사와 가정부까지 딸린 최고급 주택에서 떵떵거리며 지내다가 미증유의 역병이 창궐하자 상황이 급반전됐다. 이러다 말겠지 가벼이 여겼다가 전 세계적인 격리가 이어지자 캄보디아도 국경을 봉쇄했다. 직격탄을 맞은 사업은 급전직하했다. 손님이 줄어든 게 아니라 아예 끊겼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1년을 버텼지만 더 짜낼 여력이 없자 폐업을 선언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캄보디아에서 꽤나 유명세를 탔었는지 현지 신문에서는 <블랙○○> 철수를 대서특필했다는 후문이다.
부산 번화가인 서면에다 타투 점방을 열어 재기를 노렸지만 기대만큼 재미가 별로 없댔다. <블랙○○>를 함께 운영했던 형과 캄보디아 재진입을 진지하게 고심 중이지만 선뜻 마음이 동하진 않는다고 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부담이 커서겠다. 10년 넘게 쌓은 아성이 어디 가겠느냐고 추켜세웠더니 자기도 그게 큰 미련이라 갈등이라며 입맛을 다셨다.
요즘 단골 안색이 편치 않다. 심기 불편한 손님더러 "왜 죽상이세요?" 대놓고 물어볼 만큼 깎새가 맹랑하진 않아서 눈치만 살피다가 만다. 단골 누이 내외는 평택에 사는데 부산 친정을 자주 찾는 모양이었다. 평택 매형이 부산 내려올 적마다 염색 하러 점방엘 들르면 깎새와 미주알고주알 말이 많아진다. 며칠전 단골이 왜 죽상인지 매형이 귀띔해줬다.
- 부친이 많이 편찮으신가 봐요?
- 매형이 그러던 가요?
호전과 악화가 반복되다가 병원에서 해줄 건 더 이상 없다는 통보를 최근에 받았다고 한다. 주치의가 호스피스 몇 군데를 추천하면 그 중에 선택을 해야 하는데 그 목록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안 그래도 새카만 피부에 눈까지 퀭하게 꺼진 단골은 몹시 피곤해 보였다. 다가올 마지막을 대비하려 마음 단단히 먹은 성싶지만 별로 신통치가 않다.
내일 당장 큰일을 당한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구순 맞은 충북 음성 장모와 파킨슨병으로 요양병원에 아예 터 잡은 모친이 문득 떠오른 깎새는 타투이스트에게 그만 전이되고 만다. 손님이 없었으니 망정이지 한동안 일손을 잡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