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인지를 간략하게 정의 내리자면, 스스로 자기 생각에 대해 생각하는 능력이다. 만약 갈등 관계에서 발휘될 경우 반성, 사과, 화해 등으로 나타나겠지만 애당초 전략적 사고와 합쳐 이상적으로 발휘된다면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제어해 서로의 관계를 원만하게 가져가는 자기 성찰 능력이다. 이를테면 몹시 언짢고 못마땅하다고 곧이곧대로 성을 내지 않고 이러는 게 과연 맞는지를 살피는 자기 검증 절차인 셈이다.
역사적 인물을 통해 메타인지를 조명한 칼럼이 있다. 조선 선조, 광해군, 인조 대에 걸쳐 세 번 영의정에 오른 오리 이원익은 인조반정이 성공한 후 광해군 시절 정치적 파행의 책임을 물어 반정 다음날 89세 나이로 참형을 당한 정인홍과 완전 대비된다.
정인홍은 광해군 대에 있었던 임해군과 영창대군의 죽음, 그리고 인목대비의 경운궁 유폐에 모두 관련되었다. 광해군 재위 기간에 그와 이원익의 관계도 좋지 않았다. 위 세 사람의 처벌 문제를 두고, 두 사람은 대립했다. 이원익은 너그럽게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정인홍은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인목대비 문제로 이원익이 강원도 홍천에 귀양 가 있을 때, 정인홍은 그 처벌이 너무 가벼우니 벌을 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라는 책에 나오는 이원익의 정인홍에 대한 언급은 이원익이 가졌던 인간 이해의 한 자락을 보여준다. 정인홍이 죽은 후 이원익은 가까운 후배 재상에게 이렇게 물었다. “당신도 나중에 마음이 바뀌어서 소인小人으로 변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소인’이란 말은 세상 물정에 대한 이해력이 떨어지고 바른 도리를 지키지 못하는 사람을 뜻했다. 그러자 그 재상은 “제가 비록 옛 성현들만은 못해도 어찌 소인까지야 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그러자 이원익은 “정인홍은 젊어서부터 원칙을 지키는 사람으로 유명했소. 그 사람이 폐모론에 관여하리라 누가 예상했겠소?”라고 반문했다. ‘폐모론’은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조선시대에 어떤 이유로도 허용될 수 없는 주장이었다. 이원익이 이어서 말했다. “나이 늙고 뜻이 쇠해지고 친구들이 밖에서 권하고 자손이 안에서 충동질하여, 마침내 폐모를 청하는 상소를 올려서 90세 나이에 처형되었소. 나는 그 일 이후 나 자신을 더욱 조심하고 두려워하며 지냅니다.”(이정철 경북대 영남문화원 전임연구원, <역사와 현실-이원익 '메타인지'>, 경향신문, 2024.02.21 에서)
칼럼 말미에 필자가 생각하는 메타인지가 밝혀진다.
역사의 시공간에서 주어는 자주 바뀌어도 술어는 별로 바뀌지 않는다. ‘폐모론’이 역사의 시공간에서 주어라면, “나이 늙고 뜻이 쇠해지고 친구들이 밖에서 권하고 자손이 안에서 충동질”하는 것은 술어에 해당한다. 주어는 그때그때 바뀌는 문제와 쟁점이고, 술어는 그것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처리 방식이다. 지금은 왕조시대가 아니니 ‘폐모론’ 같은 것이 문제 될 수 없다. 하지만 지금도 “나이 늙고 뜻이 쇠해지고 친구들이 밖에서 권하고 자손이 안에서 충동질”하는 상황은 나타날 수 있다.
이원익은 사람은 누구나 잘못된 방향으로 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그가 남에게 너그러우면서도 스스로에 대해서는 엄격히 절제할 수 있게 해주었을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그는 인간에 대한 메타인지가 뛰어났다. (위 칼럼)
사람은 누구나 잘못된 방향으로 변할 수 있기 마련이라서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방법이 없나 해서 '메타인지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검색하면 따따부따 훈수가 참 많다. 그 중 깎새가 보기에 가장 인상적인 방법 3가지를 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야말로 앎이다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논어』)'라고 공자는 말했다. 또 '무지보다 위험한 것은 잘못 알고 있는 것이고 무지보다는 가짜 지식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 버나드 쇼도 떠오른다. 이에 대해 '인간은 무지한 존재다. 따라서 인간이 뭘 잘 모른다고 놀랄 필요는 없다. 뭘 잘 모르더라도 자신의 무지를 인지할 수 있을 때는 아직 희망이 있다. 무지를 안다고 해서 자신의 무지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무지에서 벗어나고자 자신을 채근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인 김영민의 말은 위안으로 삼을 만하다.
둘째, 기록하기. 종지를 키울 순 없어도 더 쪼그라들지 않게 하자면 부끄러운 과오까지 줄기차게 드러내야 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편 격인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붉은 여왕이 앨리스에게 한 말, "제자리에 있고 싶으면 죽어라 뛰어야 한다"는 왜 기록을 해야 하는지 그 까닭을 에둘러 표현한 게다. 쪼그라들지 않으려면 죽어라 기록해야 한다.
셋째, 복기하기. 떠올리고 싶지 않은 실수, 과오, 실패일지언정 끊임없이 곱씹는다. 곱씹을수록 부끄럽고 후회스럽지만 이 고육책은 소인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한 자구책으로 분명 실리적이다.
남보다 상대적으로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깎새가 인간 구실을 그나마 하는 건 '우리는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라는 천금같은 신념을 겨우 얻어서이다. 절대적이지도 완전하지도 않은 인간이 무난하기 위해서는 자기반성 말고 뾰족한 수가 있다면 어디 한번 내놔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