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난 게 없는 깎새지만 경멸하는 인간형은 있다. 바로 경청하지 않는 자다. 관록을 자랑하는 이에 기대 애걸복걸 조언을 구하지만 막상 귀담아듣지는 않는다. 그럴 거면 뭣하러 물어보나 싶겠지만 꿍꿍이가 따로 있다. 제 선에선 이미 윤곽을 잡고 결론까지 내린 사안을 권위자 입을 빌어 확인받고 싶어하는 속내다. 립서비스를 빙자한 당위성 확보라고나 할까. 만약 남 훈수가 자기가 친 설레발과 어슷비슷하면 뛰어난 통찰력을 가진 자기가 무척 자랑스럽겠지만 만약 판이하면 귓등으로 흘리면 그만이다. 왜냐하면 이미 내린 결정을 번복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으니까.
남원북철南轅北轍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수레 끌채는 남쪽을 향하고 바퀴는 북쪽으로 간다는 뜻으로, 마음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이다. 중국 전국시대 계량이란 자가 마차를 타고 북쪽으로 가는 사람을 만났다.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더니,
"남쪽 초나라로 가오."
계량이 어처구니가 없어,
"아니, 이보시오.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이 북쪽이지 어디가 남쪽이란 말이오?"
그랬더니 그 사람은 픽 웃으며,
"그게 뭐가 대숩니까. 어느 쪽으로 가든 길이야 결국에는 초나라로 통해 있을 테니까요. 제 말은 준마라서 아주 잘 달리고, 마부는 말몰이 솜씨가 뛰어나며, 또한 나는 노자를 두둑이 가지고 있답니다."
그 사람은 과연 초나라에 도달했을까?
깎새 부친 문하에서 기술을 배우던 아무개가 일주일 전에 개업을 단행한 모양이다. 개업을 못 하면 당장이라도 세상이 무너질 듯이 성화였지만 정작 깎새 부친은 손사래를 쳤다. 그럴 만도 했다. 암만 가르쳐도 안 느는 기술도 기술이지만 말귀까지 도통 어두워 전업轉業이 시기상조임은 틀림없었다. 게다가 큰 줄기는 볼 줄 모르고 지엽적이고 자잘한 것에만 신경을 쓰는 기질로는 개업이 문제가 아니라 망조만 앞당길 거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당사자가 '못 먹어도 고!'라고 내지르니 달리 막을 방도란 없다. 문하생이 개업했으니 축하 방문을 안 할 수가 없었던 깎새 부친이 돌아와서는 분통을 터뜨렸다.
"개업에 필요한 게 뭐냐고 물어보길래 목이 아프게 알려줬더니만 알려준 대로 해놓은 게 하나도 없어. 지 쪼대로 다 해놨어. 그러면 뭣하러 물어보누."
그 사람은 과연 초나라에 도달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