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 밀면을

by 김대일

글은 새벽에 올라갈 텐데, 오늘은 오후까지 꽤 분주한 일정이 이어질 게다. 깎새 모친 신경과 정기 외래 진료가 잡혀 있어서다. 4개월마다 예약이 잡히지만 병세가 심상치 않았던 작년에는 주기 따질 겨를 없이 들쭉날쭉했었다. 다행히 작년 말부터 상태가 호전돼 병원 향하는 발걸음이 덜 무겁다. 하지만 파킨슨이란 병마는 언제 어떻게 날뛸지 모르는 변화무쌍한 녀석이다. 앉거나 누운 자세에서 혈압이 급격하게 떨어져 실신에 이르게 되는 기립성저혈압 병증은 특히 요주의다. 일전에 요양병원 입원복을 입은 상태로 아찔했던 상황을 목격한 터라 깎새로서는 안심은 더더욱 금물이다.

아무튼 오전에 잡힌 진료 소견이 별 탈 없기를 바랄 뿐이다. 진료가 끝나면 약을 타는 데 제법 시간을 잡아 먹을 게다. 그러고 나면 곧 점심일 테고. 화창한 초여름날, (요양)병원을 나와 (종합)병원 들렀다 다시 (요양)병원으로 들어가는 짧은 외출일지언정 이대로 병원 볼일만 보다 끝내기엔 너무 아까워서리 미리 요양병원 측에 양해를 구해 복귀 전에 모친과 외식할 계획을 세워둔 깎새. 마침 부친도 동행하니 참으로 오랜만에 노부부가 한 자리에서 식사를 함께하는 장면은 실로 훈훈할 거이다.

메뉴도 정했다. 밀면이다. 냉면이면 더 좋았겠지만 틀니가 성치 않고 목삼킴 애로가 아직 남아 있어 질긴 면발은 곤란해 밀면으로 낙착을 봤다. 밀면은 냉면 다음으로 깎새 모친 최애하는 음식 중 하나다. 서울내기 모친은 냉면을 즐기셨다. 간혹 무슨 면옥이라며 원조 흉내를 내는 가게엘 들러 평양냉면을 드시면서도 맛에 대해선 가타부타 말씀이 없으셨다. 어릴 적 서울에서 먹던 냉면 맛에 비할 바가 아니어서겠지만 그렇게라도 옛 추억을 곱씹으려는 심산이 아닐까 짐작만 할 뿐이었다. 휠체어가 아니면 운신이 어려워지면서 냉면 대신 동네 밀면 가게로 모시거나 사다 드렸다. 자시면서 여전히 맛에 대해서는 과묵하셨다. 파킨슨이 본격적으로 마각을 드러낸 이후로 깎새는 모친과 외식할 기회가 생기면 꼭 밀면 가게로 향했다. 면발을 젓가락으로 집어서 입에 넣어 오물오물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모친 상태를 가늠해 보려는 의도에서다.

깎새는 깎새대로 밀면에 애착이 강하다. 밀면을 먹을 적마다 어김없이 모친이 떠오르고 모친이 손을 댔던 먹거리들까지 비엔나소시지마냥 줄줄이 엮어져 떠올라서다. 밀면이 추억을 격발하는 일종의 트리거라고나 할까. 자식들이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깎새 모친은 음식 장사를 했다. 마누라 노는 꼴을 못 보는 부친 성화 때문인지, 남편을 도와 가정 경제 부흥에 일조하려는 자발적 의지인지는 노친네들이 서로 짜기라도 한 듯이 함구하는 바람에 알 길이 없다. 아무려면 어떠랴, 1980년대 남들은 큰맘 먹고 사 먹었을 먹거리를 스스럼없이 삼시 세끼로 먹는 호사를 누리긴 했다. 강원도 원주 살던 모친 손위언니, 그러니까 작은 이모한테서 기술을 전수받아 연 돼지갈비구이점을 필두로 중화요리, 아구찜을 거쳐 최종적으로 분식점에 이르는 장사 이력만 근 20년이었다. 손이 크고 씀씀이가 덜퍽스러웠던 모친은 외상을 남발했고 별로 안 남는 이문 탓에 가정 불화가 끊이질 않았을갑세 중진국 고지가 코앞이라며 경제개발이 한창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배 곪는 이들이 허다했던 시절 돼지갈비, 자장면, 우동, 짬뽕, 밀면, 아구찜, 떡볶이, 오뎅, 튀김에 이르는 먹거리 호강을 톡톡히 누린 건 순전히 그 집 맏아들로 태어난 행운 덕이다.

그때 그 음식 맛에 인이 박여서인지 엔간히 안 비슷하면 맛나다는 표현이 쉽게 터지질 않는다. 작위적일망정 그냥 맛있다고 말하면 될 일을 "먹을 만하네"란 어정쩡한 품평으로 맛이 있는지 없는지 갈피를 못 잡게 해 애써 장만한 사람 기운빠지게 만드는 심술이 탁월하다고 오죽하면 마누라가 역정을 낼까. 하지만 그건 마누라가 모르고 하는 소리다. 도대체 입맛에 착 달라붙질 않는데 아닌 걸 기다 라고 할 순 없지 않은가. 제 아무리 매혹적인 양념으로 재워서 구워낸들 1980년대 모친이 구워줬던 돼지갈비 맛이 아닌걸 어쩌란 말인가. 돼먹잖게 자극적인 표현을 써가며 내놓는 떡볶이라 한들 어릴 적 모친이 분식점하면서 팔던 떡볶이 맛 근처에도 못 미치는 걸 어쩌란 말이냐고. 굳어져 버린 자기만의 미식 기준을 사수한 채 부러 엄지 척! 해주는 시늉조차 경멸하는 고지식함이 치명적이라손 하는 수 없다. 그러고 보면 말이 쉬워 소울푸드지 영혼을 위로해 줄 그때 그 맛이 그대로인 음식을 찾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차라리 그때 그 음식을 갈구하는 그 자체만으로 이 모진 세상을 견디는 정신 승리용으로 활용하는 편이 더 낫지 싶다.

그럼에도 오늘 밀면을 먹으면서 소울푸드 운위할 여유는 아마 없지 싶다. 모친이 젓가락이나 포크로 직접 면발을 집어서 입에 넣어 오물오물거리기까지 자연스러운지 어떤지 관찰하는 데 신경이 더 갈 게 뻔해서 말이다. 꽤 됐다. 모친과 식사를 하면 음식 맛을 못 느낀 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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