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팔아 돈 벌어봤으면

by 김대일

남의 머릴 깎든 글을 팔아먹든 그걸로 밥벌이를 할라치면 다수의 인정이라는 걸 받아야 가능하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다만 이발은 제 혼자서 부단히 절차탁마해 그 기술이 보기 싫지 않을 수준에까지 올랐다 여겨지면 얼치기일망정 최저임금 품삯 정도는 받아 갈 수 있는 반면 제아무리 '나 잘났소' 떠들어본들 그 바닥에서 존재감이 전혀 드러나지 않으면 평생 원고료 한번 못 만지는 신세를 못 면하는 게 쓰는 자의 숙명이다. 둘 사이를 절대평가냐 상대평가냐로 나눈다면 너무 지나친 가름인가.

이발로 돈을 벌든 글품을 팔든 어차피 돈, 돈, 돈 거리는 건 똑같은데 뭐 그리 대수냐고 시비를 걸어 오면 똑 부러지게 대꾸할 바가 궁하면서도 기실 커트로 하루 매상 백만 원을 찍는다 한들 원고료 만 원짜리 글 파는 거에는 비할 바 못 된다는 게 솔직한 속내다. 그간 목말랐던 인정 욕구가 성취되었다는 쾌감이 의외로 가공한 까닭이겠다.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아무나 쓸 순 없다는 냉정한 상대평가의 관문을 통과했다는 자부심 말이다.

자부심도 자부심이지만 글 팔아 돈 버는 경지에 이른 이들이 부러운 것도 숨기지 않겠다. 깎새가 매일 들어가는 글쓰기 플랫폼을 둘러보면 글쓴이를 위해 아낌없이 후원해 주는 이들이 지천이고,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작은 문학상을 돌며 써서 냈다 하면 상금을 꿀떡꿀떡 타가는 능력자들을 보면서 과연 무슨 수를 써야 저리 되는지 영혼이라도 팔아 그 비법을 전수받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글쓰기의 순수성을 짓밟고 배알 없이 제 잇속에만 눈 먼 먹물치 꼴이 따로없다고 한들 속물 근성이 뭐 어때서. 도리어 남의 머리 깎아 버는 돈에다 적을갑세 글 판 돈을 보태는 게 용서받지 못할 잘못은 아니잖냐고 쏘아붙일 테다. 부산 한갓진 하꾸방에서 노느니 염불하는 심산으로 끼적대다가 통장에 원고료랄지 후원금이라도 꽂히는 날엔 이발하는 틈틈이 부업도 겸했다며 식구들한테 생색내고 좋은 일일망정 욕 먹을 짓은 아니잖는가.

2017년이면 지금으로부터 8년 전, 그때도 글 팔아 돈 벌어보겠다고 깎새가 애면글면했었나 보더라. 그때 썼던 비망록을 우연히 찾아 읽으니 감회가 새로우면서 한편으로는 착잡했다. 생각만큼 안 되는 짓에 왜 그런 공력을 기울였는지, 기울이는 공력은 여전한데 8년 전이나 지금이나 글 팔아먹은 이력이 없는 건 왜 이리 똑같은지 해서 말이다.


지난 주말 막내딸과 낙동강 생태 탐방선을 탑승했던 소감문을 쓰려는 속셈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내달 17일이 <사하모래톱문학상> 공모 마감일이고 수필 부문(3편)에 응모하려고 쟁여둔 두 편 말고 나머지 한 편을 매조지해야 하는 입장에서 ‘사하구의 역사·문화·생태·자연경관 등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낙동강 생태 탐방선 탑승기>야말로 그 의도에 맞아떨어지는 글감이니 좌우당간 끼적거리고 볼 일이었는데, 올해 뿐 아니고 그놈의 문학상이 있다는 사실을 안 뒤부터(정확하게 작년 이맘 때부터) 왜 때만 되면 목을 메는지 곰곰 생각을 했고 하면 할수록 괜스레 혼자 짠해지다가 급우울해져 마침내 엉뚱해진 것이다.

문학상이고 보니 어쨌든 입선만 하면 소위 ‘작가’ 소릴 들어 좋을 게다. 하지만 세상 명예로울 ‘작가’ 호칭보다 나는 기실 그 상금이란 잿밥에 더 홀려 있는지 모른다. 300만 원씩이나 하는 대상까진 안 바라도 가작 50만 원(세전이겠지만)이면 올 여름 휴가비로는 넉넉하겠다는 같잖은 계산이 내겐 더 동기 부여다. 입상자 발표날인 8/9은 한창 휴가철이고 일이만 원에 벌벌 떠는 아빠 입에서 ‘유감없이 놀아라!’란 소리에 놀란 두 딸이 난생 처음 원없이 물질을 해대는 상상. 그게 내가 글을 쓰고 싶고 써야만 하는 이유다.

갈데없는 백수가 안돼 보였는지 친한 친구가 손을 써 없던 상근직을 부러 만들어 생활협동조합 사무국장으로 앉혔다. 눈칫밥 먹는 신세인 줄 뻔히 아니 박봉이라고 투정 부릴 만큼 눈치 없진 않으리. 때 맞춰 꼬박꼬박 나오는 걸로도 감지덕지해야겠지만 맞벌이하는 마누라 월급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는 판에 용돈 운운하며 손을 벌리는 낯짝이 소가죽보다 두꺼워야겠지만 그러질 못하니 매양 죽을 맛이다. 아비 헐빈한 호주머니 사정을 한글보다 먼저 깨친 갸륵한 딸애들 덕에 지금까지는 돈 없어 아비 구실 못 한다는 원망 들은 적이 없지만 딸애들이 커갈수록 부모에게 바라는 욕망은 가속도가 더 붙을 게 뻔하다.

“아빠, 여름에 우리 워터파크 못 가?”

“가고 싶니?”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방학 때 계속 집에 있었잖아.”

“더울 때 집 나가면 고생인데···.”

옹색하다. 실력 달린다고 학원 보내 달라는 아이한테 돈 달려서 못 보내겠다는 부모가 세상 천지에 어디 있냐고 타박하는 아이엄마한테 영어 과목이 절대평가로 바뀌었다는 둥 자기주도학습이라는 둥 되도 아닌 말로 입막음하는 아비가 세상 천지에 또 어디 있을까. 그리 둘러대면서도 마음은 수천수만 번 깨지고 으스러지지만 정작 방법이 안 보이니 더 깨질 것 없이 와장창이다.

내 나이 벌써 마흔 여섯, 세상 쓴맛 안 지 불과 대여 섯 해밖에 안 됐으니 마흔에서야 겨우 철이 든 셈이다. 철 들고 눈 들자 머리는 벗겨지고 배까지 나온 중년 남자로 변해 버렸다. 볼품없어진 사내가 내세울 만한 건 세상 어디에도 별로 없다는 걸 겨우 깨달았지만 너무 늦은 걸까?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고백은 일종의 용도 폐기 선고나 다름없다. 내가 왜 기를 쓰고 글을 끼적거리는 줄 아니? 더 늙기 전에 그래도 뭔가 할 줄 아는 게 있으니 제발 쓸데없단 소리만은 안 듣고 싶은 절박감이 첫 번째고, 문학상이 됐든 투고가 됐든 훗날 글값이라도 부쳐 먹을라치면 지금부터라도 내 돈 안 드는 사무실 컴퓨터에다 자판질해대는 게 최선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며, 머리채 줴뜯어가매 내 노력으로 일궈 내 돈이랍시고 벌어서 푼돈일망정 그것으로 사랑스런 내 딸들 워터파크도 데려 가고 영어 학원에도 멀쩡히 보내고 싶은 애끓는 부정父情 때문이겠다.

대중문화평론가 임범은 6/27 한겨레신문 칼럼에서 최근 26~28년 동안 임금노동자 평균 월급을 포함한 물가가 5~7배 뛸 때 원고료는 두 배를 못 넘겼다면서 ‘최저 원고료’ 제도를 시행해서라도 ‘지금의 글값이 비정상이고 바뀌어야 한다’는 사회와 정부의 인식 개선을 촉구했다.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친다는 그 원고료라도 제발 한번 받아봤으면. 얼마 안 남은 <사하모래톱문학상>에 올해는 기필코 응모하겠지만, 그 깜냥이란 게 콩나물 쑥쑥 자라듯 느는 게 아니니 헛심만 쓰다 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개고생의 산실이라던 <체험, 삶의 현장>도 일당은 주던데, 참. (2017. 06 깎새 비망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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