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처구니가 없지만 재밌다

by 김대일

글자 크기 11pt로 A4 용지 한 장 채우면 몇 자나 써질까? 찾아 보니 200자 원고지로 10매 정도 되는 분량이란다. 그럼 A4 한 장을 채운 글자로 얘기를 그럴듯하게 꾸밀 수 있을까? 충분할 게다. 초단편소설이 원고지 5~30매 분량이라고 하니까.

긴 글에는 썩 관심이 없는 요즘 세태다. SNS가 일상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굳이 긴 글이 아니더라도 재밌는 게 지천으로 깔렸다. 게다가 짧고 임펙트까지 강하다. 유튜브 쇼츠만 섭렵해도 정치, 경제, 문화 일반에서 어지간한 평론가 뺨 칠 태세니까. 그러니 웬만한 참을성이 아니고선 두꺼운 책장을 정성들여 넘기거나 코딱지만 한 액정화면에 깨알같은 글자를 보려고 오래 공들일 사람은, 글쎄올시다. 역으로 짧으면서 임펙트까지 강한 글이면 각광받을 수 있을까? 이름 대면 알 만한 중견 소설가들이 초단편소설로 베스트셀러 대박 치는 경우도 있으니까 또한 그럴싸하다.

습작하는 입장에서 긴 글을 쓰자면 긴 호흡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글이라는 구조물의 얼거리를 촘촘하게 짜고 그에 걸맞은 인문학적 소양을 배양하기 위한 시간적 투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짧은 글엔 자투리 시간이면 족하다. 틈틈이 비는 작은 조각 같은 시간을 여투어 써보는 거다. 그렇다고 대중없으면 곤란하다. 짧은 글이라고 조건이 안 달리는 건 아니다.


- 규칙적으로 쓰기

- 분량에 관계없이 구조물의 얼거리에 치열하기

- 의미를 함축시킬 표현에 몰두하기


짧고 강한 임펙트에 동할 적마다 깎새는 성석제를 찾는다. 그가 쓴 짧은 글을 읽으면 '나도 꼭!'하는 전의를 다지거니와 그 번뜩이는 기지機智를 어떻게 하면 수혈받을 수 있을지 궁리하면서 재밌어 한다. 다음은 성석제가 쓴 <우주의 끝>이라는 짧은 소설이다. 진짜 짧지만 소설은 소설이다.


한 사내가 오랜 연구 끝에 우주의 끝에 관해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우주의 끝에는 팻말이 있다.

<여기는 우주의 끝, 이제 집으로 돌아가시오.>

- 성석제,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강, 2007, 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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