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부도 위축되는데 하물며 유시민이야

by 김대일

유시민이 한 유튜브 방송에 나와 앞으로 정치 비평을 되도록 하지 않겠다고 하자 그 이유가 몹시 궁금했다. 지난 대선 때 김문수 후보 배우자 비하 논란을 겪으면서 자기 마음과 다르게 비판을 받는 데 대해 힘이 들었고 부담이 너무 커졌다면서 "글을 쓸 때 자기검열을 하게 되면서 글이 안 써진다. 그래서 비평을 안 하는 게 맞겠다고 판단했다"라고 밝혔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깎새가 독서토론 모임이라는 데를 들락거릴 무렵 겪었던 일이다. 이 아무개는 당시 40대 초반 미혼 여성이었다. 스페인어를 전공해 중남미 지역에서 코트라 직원으로 일하다 귀국한 뒤 부산에서 직장생활하던 중이었다. 한번은 모임 당일 오후에 이 아무개가 불참을 통보해왔다. 숙부께서 급작스럽게 돌아가셨다면서. 회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애도를 표하면서 불참을 아쉬워했다.

잠시 뒤 그녀는 급히 글을 올렸다. 내용인즉, 모친은 그녀가 미혼 여성이니 부의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판단이 안 서 회원들에게 물어 본다면서 생전 숙부와 그리 돈독하지 않았지만 어떻게 하는 게 사회 통념에 맞는지 조언을 구한다는 골자였다. 글을 읽자마자 곧장 키보드를 두드려 댔다.

본인의 마음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고인에 대한 본인의 감정이 부의금을 내고 싶어 하면 내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죠. 미혼이니 기혼을 따질 계제는 아닐 듯합니다. 하다하다 상갓집에서까지 남녀를 구분짓는 게 한심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쉽사리 엔터키가 눌러지지 않았다. 좋게 포장해 센서티브하다지만 상대와 의견 대립이 일어날라치면 신경질적으로 변하는 그녀가 적잖게 목격되었던 게 불현듯 떠올라서다. 아마 그래서였을 게다. 제 딴에는 위한답시고 건네는 조언이 되레 감정을 상하게 만들지 모른다는 염려가 앞서 괄호에다 사족까지 달아 주절거리기까지 했다.

(어머니를 비난하는 게 아니라 미혼이니 비혼이니 하는 따위로 차별 아닌 차별을 짓는 사회가 구저분해서 그런 것이니 오해는 마시길.)

부연한다고 단 말꼬리마저 구차해 보여서 엔터키만 멀뚱히 쳐다보며 누를까 말까 한참을 고민했더랬다. 그러던 중에 다른 회원이 선수를 쳤다.

안하셔도 될 듯 합니다. 00님의 생각이 가장 우선이죠... 하는 게 좋을 것 같으면... 하시구요 ㅋ

그길로 깎새는 자기 댓글을 싹 지웠다. 조언이 그럴싸했는지 부의금은 안 내는 걸로 정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했으니 누가 조언했건 주장이 관철되었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찝찝한 여운은 가실 줄을 몰랐다. 다른 회원이 단 댓글이나 깎새가 건네려 했던 조언이나 그게 그거였는데도 왜 자기는 댓글을 감히 달지 못했는지, 혹시 그녀의 감정만 살피다 끝내 알아서 기고 만 자기검열이 작동한 건 아닌지 하고 말이다. 이기와 이타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조절 능력, 즉 자기검열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어느 선까지가 적절한 표현인지 가늠하는 건 참 어렵다. 그런데도 과감하게 댓글을 단 회원은 명쾌하게 타파했고 깎새는 끝내 주저했다. 멍청하게시리.

일개 범부인 깎새도 자기검열로 인해 흔하게 위축되는데 하물며 그 발언과 기고마다 지대한 파급력을 일으키는 유시민은 오죽할까. 그럼에도 유시민보다 냉철하고 통쾌하게 비평을 하는 정치평론가가 거의 전무한 시대에 '되도록'이라는 완곡한 전제가 '이만'으로 들려 그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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