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젊은 사내 둘이 들어왔다. 다음날 입대하기 전 머리를 깎으러 왔다는 사내는 9밀리 덧날을 끼워 밀어 달랬다. 친구인 듯 따라온 다른 사내가 중간에 끼어 들었다.
"친구 머리 제가 밀면 안 될까요?"
당돌했으나 선선히 받아줬다. 하기사 깎새 소싯적엔 안 그랬나 뭐. 친구 입대가 가까워지면 호들갑도 그런 호들갑이 없었지. 못 하는 거 빼고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이야 암만. 엿듣자니 친구는 병역을 먼저 마친 데다 공교롭게도 이발병 출신이라서 바리캉 든 자세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앞머리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천천히 머리털을 미는 그 광경이 하도 정성스러워 경외감마저 일 정도였다. 군대 갔다 온 친구가 뒤늦게 군대 갈 친구 머리를 깎아 준다는 것, 별일 아닌 성싶어도 두 사내들 기억 속에 깊은 주름으로 파여 영원히 잊지 못할 기념이 될 게 틀림없다.
그나저나 입영일자 나오자 세상 다 산 사람처럼 온데만데 청승이란 청승 다 떨던 그때 그 녀석들이 벌인 요절복통 소동극들이 제법 배꼽 빠질 텐데 기억이 별로 없다. 이럴 때 꼭 필요한 녀석이 용이 녀석이지만 인도네시아에 처박힌 뒤론 낄끼빠빠가 안 돼 아쉽다. 모르는 것 빼고 다 기억하는 용이야말로 살아있는 재생기억장치인데, 쩝. 용아, 메일로도 괜찮으니 떠오르는 거 있음 알려주라. 이대로 끝맺기 섭섭해서 예전에 용이가 귀띔해 준 웃픈 실화로 갈음한다. 용이 불알친구들 에피소드라고 하니 더 기가 차다.
신병훈련소 앞까지 따라온 불알동무 너덧은 입영을 앞둔 숫보기 동정을 떼주려고 군부대 주변 색주가를 어슬렁댔다. 생사고락을 같이할 죽마고우의 입대를 기념하려는 이벤트로는 가상한 일일지 모르겠으나 정작 당사자는 썩 내켜 하지 않는 눈치였다. 친구 좋다는 게 뭐냐, 지금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뿐이니 돈 걱정일랑 말라며 어르고 달래보지만 영 마음같지 않게 굴었다. 허나 사람을 뭘로 보냐 눈을 희번덕대면서 까칠하게 굴었을지언정 한번만 더 등 떠밀었다면 못 이기는 척 넘어가 줄 작정이었다는 후문이고 보면 숫보기 내숭도 여간이 아니었을 듯.
아무튼 어영부영하다 서산에 해 졌다. 우선 숙식부터 해결하자고 의견을 모은 뒤 근처 여관의 제일 큰방을 빌린 장정들은 당장 내일이 입영이라는 현실에 울적해져서 어제 마신 술기운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또 다시 석별의 술잔을 높이 들다가 이내 모두들 그대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동 트려면 한참 남은 어둑새벽에 갑자기 누가 벌떡 일어나더니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더니 이기지 못하는 분으로 씩씩거렸다. 인기척이 나서 잠귀 밝은 그 중 한 녀석이 뭔일인가 싶어 소리나는 쪽을 쳐다봤다. 아, 거기엔 도살장 끌려가는 소마냥 날 밝으면 얄짤없이 훈련소로 직행인 그날의 주인공이 눈치라고는 밥 말아 잡숫고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디비자는 그 이름도 찬란한 불알친구들을 이글거리는 시선으로 쏘아보면서 호러무비를 찍고 계시더란다. 동 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지? 칠흑같은 여관방을 휘감은 정적을 깨뜨리는 단말마적 포효.
"너그가 친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