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만 있는 도시

by 김대일

생기를 잃고 역동성이 사라진 도시 부산은 '노인과 바다'라는 별칭으로 불린 지 꽤 됐다. 기댈 구석이 없는 청년 인구가 빠져 나간 도심에는 청년보다 노인 비중이 훨씬 높고 고개 돌려 보이는 거라곤 바다뿐인 이 도시의 배부른 구의회는 대통령이 지역 성장을 통해 균형발전을 이뤄보겠다며 해양수산부를 조속히 이전시키겠다는데도 그걸 딴지 걸고 자빠졌다. 정신 나간 지역구 국회의원은 국민이면 다 받을 민생지원금을 부산 시민은 안 받겠다고 뻗대질 않나. 이 머저리들 넌더리가 난다.

서면은 부산 중심가임에도 지독했던 윤 정권 3년을 직격으로 맞아서인지 바람 빠진 풍선마냥 상권이 쪼그라들었다. 경기 침체가 이어지다 보니 매상이 확 가라앉아 버티지 못하고 내놓은 점방이 수두룩하다. 가뜩이나 줄어든 유동인구로 한때 휘황찬란했던 다운타운은 을씨년스러워진 지 오래다. 낮이라고 다를까. 지하철 서면역과 부전역 사이 지하상가를 가 보라. '노인과 바다'의 노인이 꼭 바다에만 있는 건 아니니까.

부산 지하철 1호선과 2호선이 교차하는 서면역은 당연하게도 서면에 위치했다. 하여 중심가 역 주변은 오고가는 인파들로 늘 붐빈다. 1호선 개찰구를 나와 범내골역 방향으로는 대연지하상가(이하 '대연몰')가, 그 반대인 부전역 방향으로는 부전지하상가(이하 '부전몰')가 길게 연결되어 있다. 이름만 다르다 뿐인 지하상가이지만 대연몰과 부전몰 분위기는 극단적으로 다르다. 젊은이들로 한창 북적일 무렵 대연몰은 그들을 상대로 힙한 패션, 화장품, 악세서리 가게들로 주를 이뤘다. 그에 반해 지상에 부산에서 제일 크고 복잡할 부전시장이라는 재래시장과 연결되어 있어 거길 찾는 중장년층을 공략하려고 젊은 취향과는 거리가 먼 상점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 부전몰이다. 어버이날에 나이 지긋한 부모님께 선물할 법한 옷들이 진열되어 있고 간단한 조작으로 트로트 수백수천 곡이 무한반복 재생되는, 이걸 라디오라고 해야 할지 MP3라고 해야 할지 모를 기계를 좌판에 벌여 놓은 가게도 산재해 있다. 도무지 젊은이들하고는 무관한 신발, 가방, 가발 따위 잡화들로만 진열된 점포들이 줄지어 서 있는 부전몰은 왠지 퇴락한 양반집 툇마루를 닮았다.

아마 그래서일 게다. 부전몰에서 서면역으로든, 그 반대 방향으로 향하든 오가는 행인들 대부분은 노년층이다. 성큼성큼, 살랑살랑 오고 가는 청춘남녀들이 없지는 않지만 그 공간에서만큼은 엑스트라 1,2로만 명명될 뿐 비중이랄 게 거의 없다. 그렇게 그 공간에서 그들은 생기를 잃어 버리고 로맨스그레이만 더 공고하게 추앙하는 기분을 자아내게 하는 그야말로 단역으로 전락할 뿐이다.

부전시장 근처로 볼일이 생긴 깎새가 부전몰에 진입했을 때다. 자동문이 스르륵 열리자 마치 시간을 왕창 잡아먹는 괴물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는 섬뜩함에 주춤거리다가 이내 묘한 안도감이 드는 이상한 경험을 한 깎새. 한때는 젊지도 그렇다고 현저하게 늙지도 않은 자신이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경계인이라 여겼었다. 하지만 젊은이들로 복작대는 대연몰을 지날 때 들던 어쩔 수 없는 소외감보다 부전몰 늙음의 세계가 뿜어대는 골타분함에 외려 평온해지는 달갑지 않은 수긍을 어이할꼬. 만남의 장소 벤치에서 무료함에 지쳐 초점마저 잃어버린 시선을 닮고 싶은 마음 추호도 없지만 자신 또한 무료한 일상을 달래려 무료한 부전몰로 발걸음을 옮길 곧 다가올 미래가 서글퍼지는 이율배반성을 부전몰 자동문은 암시한다.

인파로 득시글거리는 중심가에서마저 '노인과 바다'를 숨기지 못하는 이곳은, 부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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