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1)

by 김대일

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는 열정이나 도취에 대해 쉽게 말하지만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의 완성은 청춘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 아닐까 가만히 생각해봅니다. 넘치는 것은 젊음뿐, 상대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헤아릴 여유는 조금도 갖지 못해 서로를 오독하는 시기를 지나야 우리는 사랑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해 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요. 공고한 '나'의 성을 허물고 타인에게 마침내 자리를 내어줄 때, 사랑은 눈부신 그 폐허에서 시작할 테니까요.(백수린)



여자가 행방을 감췄다. 다행히 그 전에 슬쩍 낌새를 비췄다는 점에서 친절한 편이다. 일전에 여자가 무심한 척 앓는 소리를 늘어놓은 적은 있었다. 제법 규모가 큰 카센터를 두 곳이나 운영하는 홀아비를 오지랖 넓은 지인한테서 소개받아 인사치레로 한두 번 만나줬을 뿐인데 자꾸 치근덕거려 성가시다고. 그때 눈치를 챘어야 했다.

어린 딸을 혼자 기르는 돌싱녀에게 경제력은 늘 목전의 난제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정욕에 사로잡혀 이글거리는 눈빛이 거북하긴 해도 가진 건 돈뿐이라는 홀아비가 현실적인 대안으로 매혹적이지 않을 리가. 그럼에도 여자는 그간 너무 물렁물렁하게 산 탓에 남자에게 준 정을 회수하기가 쉽잖은 자신의 우유부단함에 잠시 고심했던 게 틀림없다. 남자는 남자대로 이전에 교제했던 여자들에게 맵게 당한 실연의 아픔을 반면교사로 삼아 이 여자와는 기어이 해피엔딩을 이루겠다고 단단히 벼르던 터라 돌싱녀와 홀아비의 공교로운 접촉을 허투루 볼 수만은 없었다.

김중배가 다이아 반지로 여자를 호리듯 홀아비 꿍꿍이야 안 봐도 뻔하지 않냐, 색욕에 눈이 어두워 물량공세로 밀어붙여 첩실 두겠다는 심보지 그게 어디 지고지순한 부부지정이겠는가. 돈만 많은 색골보다 너를 향한 내 마음이야말로 억, 조, 경, 해··· 돈을 헤아리는 단위를 이미 넘어섰다며 위대한 사랑의 힘을 목놓아 역설했건만, 평소 헤실거리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무거운 침묵으로만 일관하던 여자. 그렇게 살을 섞은 마지막 밤은 불통이었다. 밤일 치르고 돌아누운 여자의 맨어깨가 자꾸 들썩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이 회자정리의 애석함일 줄 남자는 그땐 미처 몰랐다.

여자가 종적을 감춘 뒤로 꽤 오랫동안 배신감과 절망감에 허우적대던 남자 앞에 하루는 외제차 딜러를 하는 후배가 나타났다. 남자와 엮인 관계만 모르고 여자에 대해 다 아는 듯이 구는 후배는 그녀에게 고급 승합차를 팔아 호실적을 거둔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돈 많은 홀아비한테 재가해 호사를 누린다는 소문 듣고 혹시 몰라 찾아갔다가 월척을 낚았다면서 신나게 씨월거렸다. 만약 눈앞에 있다면 사랑했기 때문에 떠날 수밖에 없었다는 구질구질한 유행가 가사를 변명처럼 늘어놓았을 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여자가 고마워지는 남자. 자기 입으로 떠들지 않았을 뿐 왜 떠나야만 했는지 여실히 드러낸 셈이니까.

고요한 호수에 파문이 일 듯 일껏 묻어 둔 망각을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느닷없이 깨뜨리면 습관처럼 탄식한다. 누구나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랑에 헌신하다가 이별을 감행한다. 자기 의지대로 사랑하고 이별했을 뿐인데 상대가 그걸 오독誤讀한 댓가는 무참하다. 왜 그리 둔했을까.

그럼에도 건진 게 없진 않다. 상대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사랑은 깃털보다 가벼운 하찮음이자 쥐어도 쥐어도 흘러내리고 마는 한 줌의 모래일 뿐이라는 걸. 어디 꼭 사랑뿐이겠는가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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