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름한 수첩

by 김대일

집 책장 한 귀퉁이에서 허름한 수첩을 찾았다. 거기엔 벽초 홍명희 역작 『임꺽정』에서 뽑아 일일이 손으로 베껴 쓴 별난 우리말이 수다했다. 예를 들면,



미련은 곰새끼구 우악은 억대우구, 오주가 우멍한 눈을 끔벅끔벅하는 걸 보면 나는 언제든지 탑고개에서 뜸베질당하던 생각이 나네. 사람 치구 그따위 무지하구 미욱하구 용통하구 데퉁궂구 열퉁적구 별미없구 변모없는 위인을 우리 사위 양반은 무엇에 반했는지 처음부터 이날 이때까지 꼭 데리구 들어온 자식 두남두듯 속살루 은근히 두남두느라구 애를 부둥부둥 쓸 때가 많으니 그게 아마 전생에 오주의 빚을 지구 이생에 와서 깊은 모양이야. (홍명희, 『임꺽정』, 사계절에서)



그래놓고 문장 아래에다 낱말 뜻을 따로 달았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우멍하다~(눈) 물건의 바닥이나 면 따위가 납작하고 우묵하다

억대우~ 매우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소



낯선 낱말과 그 뜻을 머릿속에 한꺼번에 욱여넣겠답시고 꾀를 부렸다. 뜻에서 그 낱말을 좌지우지하는 도드라진 낱말을 찾아 밑줄을 그었다. 도드라져 보이는 낱말이 별난 낱말을 연상시킬 수 있게 말이다. 이를테면, '우멍하다'는 '눈'과 '납작'에 밑줄을 긋는다거나 '억대우'는 '덩치', 힘이 센'이 도드라져 보이는데다 '소'는 말할 것도 없이 밑줄 쫙!

그런다고 온전히 모다 입력, 저장 완료되면 그 자체로 국어사전이게! 세상 다 가진 것마냥 우쭐대지만 막상 뒤돌아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 까먹어 버린다. 글 나부랭이 써제끼던 와중에 적당한 위치에 어울리는 별난 낱말을 일전에 분명히 집적거린 것까진 기억이 나는데 잡힐 듯 말 듯 하다가 까무룩하기 일쑤다. 그러니 제 분에 못 이겨 머저리 타령만 일삼다 마는 최후가 비일비재하다.

하여 다른 방법을 모색한 것이 예시문을 주렁주렁 다는 거였다. 낱말 활용문을 꼬리표마냥 좌악 달아 놓아 눈대중을 익히는 방법. 소 뒷걸음질치다 쥐 잡는 격으로 무식한 방법이긴 하지만. 『임꺽정』 대목에 등장하는 '우멍하다'를 예로 들어 보자. 일단 그 뜻을 다는 건 똑같다. 그러고 나서 뜻 밑에다가 국어사전을 뒤져 예시문을 다 털어 버린다.



- 그는 눈이 우멍한 편이다.

- 그는 눈두덩이 우멍하고 광대뼈가 툭 튀어나왔다.

- 저 치사하고 비열하고 우멍하고 쪼잔하고 한심하고 야비하고 비겁하고 멍청하고 유치하고 째째한 자들.(《김용택, 저자들은 애국자》)



예시문을 많이 접할수록 낱말을 어떻게 쓸지 운용의 묘를 익힐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결국 문제는 암기력이다. 볼 때는 아하! 싶다가도 막상 써먹을 때는 기연가미연가한다. 복장 터져 안 죽은 게 천만다행이다.

허름하고 오래된 수첩을 한 장씩 넘기자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고질이 또 도졌다. 쉽게 외우면서 써먹을 수 있는 기발한 방법이 분명 있을 거라고 다짐하면서 말이다. 하여 이번에는 지금까지 썼던 방법을 총망라해 보기로 했다.



황천왕동이가 주인에게 찍자를 붙었다.



'찍자'라는 낱말이 낯설고 흥미롭다. 그러면 '괜한 트집을 잡으며 덤비는 짓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는 뜻부터 바로 달고 본다.

'찍자'를 연상시킬 뜻 속의 낱말로 '트집'과 '덤비는 짓'을 점찍자 낱말 밑에다 빨간펜으로 밑줄을 긋는다. 그리고 그 아래 예시문을 달 만큼 단다.



- 찍자를 놓다.

- 찍자를 부리다.

- 그 쌍것들이 이편이 돈이 있는 줄 알고 찍자를 붙자는 거야.(《백도기, 청동의 뱀》)



그렇게 '찍자'라는 낱말을 한 세트로 구비한다. 속담이나 관용구도 엇비슷하다.



수하 사람은 어중이떠중이나마 수효가 자그마치 팔십여명이건만 웬 세인지 자기 신세가 게 발 물어던진 것 같았다.



'게 발 물어 던지듯'은 볼일 다 보았다고 내던져져서 외롭게 된 모양을 비유하는 뜻이라고 밑에다 달고 꼴에 아는 사자성어랍시고 '토사구팽'을 괄호까지 쳐서 단다. 게 발이든 토사구팽이든 떠오르기만 하면 써먹을 요량으로.

다들 눈치챘겠지만, 새로운 전략이랍시고 나불댔지만 이전과 방법이 다를 게 별로 없으니 별무소용이다. (외우는 것조차 버거운 건 차치하고) 외우는 거와 써먹는 건 다른 차원이다. 지금까지 가장 중요한 걸 놓치는 우를 범했다. 긴요하게 써먹자면 세수할 때 비누 쓰듯, 밥 먹을 때 수저 쓰듯 일상생활 속 일상용품인 양 녹이는 게 선행되어야겠다. 일상용품은 굳이 그걸 어떻게 써야 할지 사용법을 따로 공부할 필요가 없다. 이미 체득화되어 있기 때문에. 낱말을 일상용품화하려면 결국 습관화 작업이 절실하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국사처럼 외워야 문제 풀 수 있는 암기과목은 보고 읽은 걸 연습장에다 주야장천 쓰고 또 쓰면서 외우곤 했다.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졸업한 지 30년이 훌쩍 넘은 지금에 이르러서도 세세한 연도, 즉 '1876년(고종 13)'은 기억나지 않아도 강화도조약이 불평등조약이라는 내용은 대강 안다. 머릿속에 대강이나마 기억할 수 있었던 건 그 시절 엔간히 보고 쓰면서 외웠던 까닭이 아닐까. 그렇다면 답은 이미 정해졌다. 학창 시절 국사 지문 외우듯 곁에 두고 읽고 또 읽고, 보고 또 보고, 쓰고 또 쓰면서 습관적으로 외워 기억의 주름에다 깊게 새기는 수밖에 없겠다.

혹자는 이렇게까지 하는 데 피치 못할 사연이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어 이참에 밝힌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특이하고 기발하며 아름답기까지 한 우리말이 도처에 수두룩하고, 그것들을 캐내는 재미가 쏠쏠하며, 이탈리아 요리의 풍미를 좌우하는 발사믹 식초처럼 밋밋하기 짝이 없는 글에 활력을 붙어넣는 위력이 워낙 대단하다 보니 그 맛을 모르면 모를까 이미 알아 버렸으니 하나라도 찾지 않으면, 찾았으면 한 번이라도 써먹지 않으면 못 배기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면 옳게 답변이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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